조평세

Dec 23, 20216 min

자유의 보전은 'Bible Literacy'에 달려있다

2022년 새해를 시작하는 기대와 바람이 예년보다도 무척 크다. 딱히 어떤 새 시대에 대한 기대라기보다는 지난 세월에 대한 환멸 때문일 것이다. 5년 전 소위 ‘촛불혁명 정부’라며 등장한 현 정부는 안보와 경제는 물론 법과 질서까지 빠른 속도로 무너뜨렸다. 여기에 더해 이제 만 2년이 된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일상생활의 변화와 정부의 비상식적 방역 조치는 국민의 피로감을 최고조로 치닫게 했다.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은 물론이고 여권조차 ‘정권교체’를 구호로 삼을 정도다.

하지만 정부에 거는 거의 모든 기대는 언제나 실망으로 귀결된다. 정치적 원칙(political principle)도, 원칙 있는 정치(principled politics)도 찾기 힘든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또 다른 ‘나라님’에 대한 기대보다 독립된 국민 개개인의 각성과 정신적 개화가 언제나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인물과 이슈 중심의 얄팍한 선거판이 아닌, 가치 중심의 정치사회 개혁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을 앞두고 국민 개개인과 가정에게 바라는 기대, 혹은 다짐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1983년 레이건, “성경의 해” 선포

1983년 2월 3일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대통령은 1983년을 국가 차원의 “성경의 해(Year of the Bible)”로 선포했다. 때는 그리 ‘한가한’ 시기가 아니었다. 1981년 취임 후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폭의 감세 정책을 펴냈고, 예상했던 잠깐의 경기 충격을 벗어나 놀라운 회복세로 전환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제 강력한 국방력 강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체주의 소련에 대한 총공세를 꾀하던 때였다(1개월 후인 3월 8일, 그 유명한 ‘악의 제국’ 연설을 한다). 그런 중대한 시기에 레이건이 국민에게 권고했던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을 다시 읽고 깊이 묵상하라는 것이었다.

레이건은 공포령 5018을 통해 “성경의 해”를 선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미국을 만든 많은 영향력 중에, 성경보다 더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것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신구약으로부터 비롯된 초기 정착민들의 깊은 신앙심은 이 거친 새 땅에서 큰 어려움과 위험을 견딜 수 있는 힘과 기질과 신념, 그리고 믿음을 주었습니다. 이 공유된 믿음은 널리 흩어진 식민주들 사이에서 공통의 목적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주었고, 이는 훗날 발전할 국가의 정신을 위한 기틀이 되었습니다. 성경과 그 가르침은 개인의 불가분한 권리, 즉 각 개인에게 고유한 가치와 존엄이 있음을 믿는 국부들의 변함없는 신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인간관은⋯독립선언서와 헌법에 명시된 이상에 반영되었습니다⋯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대통령은 “성경이라는 반석 위에 우리 공화국이 세워”졌다고까지 말했지요. 오늘 우리의 사랑하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막대한 도전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이 책이 아니고서는 사람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을” 그 성경의 지혜를, 감사함과 겸손함과 절박함으로 묵상할 가장 적합한 때입니다⋯성경 속에는 인간이 겪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적혀 있습니다.

미국 의회도 그 전해인 1982년, 공법 97-280을 통해 엄중한 위기 속에서 더욱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고 적용해야 할 ‘국가적 필요’가 있음을 선포한 바 있다. 미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은 인류 최초의 입헌자유민주공화국으로서 세계 자유민주공화주의 질서의 원형이고 기준이 되는 국가다. 성경의 지혜를 개인과 가정뿐 아니라 사회와 정치에도 적용해 나가는 것은 민주공화시민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이승만 초대대통령을 통해 미국을 모델로 건국된 나라다. 성경을 읽고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 의무는 기독교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포함한 모든 민주국가의 시민, 그리고 근대 문명인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가장 공화주의적인 책”

17세기 미국 정착과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18세기 건국의 시대까지 미국인들은 성경을 인용하면서 굳이 어느 책 몇 장 몇 절을 명시하지 않아도 모두 알아들을 정도로 성경에 익히 능통해 있었다. 미국의 건국 당시 국부들이 로크(Locke)나 몽테스키외(Montesquieu) 같은 정치철학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이 성경을 인용하며 국가 구상에 적용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글들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미국이 법 정신을 계승한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극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영국은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성경과 셰익스피어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만들었고 성경은 영국을 만들었다.”라고 했다.

성경에 대한 미국 국부들의 발언들을 더 살펴보자.

우리 미국의 기초는 무지와 미신이 가득하던 음침한 시대에 세워지지 않았다. 우리 미국은 계시(성경)의 순결하고 따듯한 조명이 인류에 계량적 영향을 가득 미치며 사회의 축복을 더하는 시대에 세워졌다⋯하나님과 성경이 없이 세상을 바르게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공화주의적인 책이다⋯성경은 지구상 가장 심오한 철학과 가장 완벽한 도덕, 그리고 가장 섬세한 정책들을 담고 있다. [때문에] 우리 헌법은 도덕적이고 신앙심이 깊은(성경을 읽는) 국민들을 위한 것이다. - 존 아담스(John Adams)
성경은 공화주의 원칙들의 최고 원천이고 근간이다. 평등과 권리와 책임의 원칙들이 모두 성경에서 나왔고, [성경은] 모든 폭정을 금지하면서 법치와 질서를 존중하게 한다⋯기독교의 가치관을 버리거나 파괴하면, 공공질서와 자유, 즉 공화국의 기초가 흔들린다. - 노아 웹스터(Noah Webster)
성경이 가르치는 원칙을 지키면 우리나라는 계속 번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후대가 성경의 가르침과 권위를 무시하면 갑작스러운 재앙이 우리를 덮칠 것이고 우리의 영광은 깊은 어둠 속에 파묻힐 것이다. -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

베일러 대학의 토마스 키드(Thomas Kidd) 역사학 교수는 대표적으로 성경의 다섯 가지 사상이 미국 공화국을 건국했다고 말한다. 첫째, 국교는 안 된다는 사상이다. 국가는 특정 교단을 차별하거나 각 개인의 신앙에 간섭해선 안 되었다. 둘째, 국가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동등한 기본권의 부여자이자 보증인이라는 것이다. 독립선언문의 유명한 “자명한 진리(self-evident truths)”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셋째, 인간의 죄악은 끊임없이 시민 정부에 위협을 가한다는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때문에 분리된 권력은 언제나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민주공화국의 기본사상이다. 넷째, 공화국은 결국 도덕으로 지탱된다는 것이다. 중앙권력이 강하지 않은 체제는 살아남기 위해 구성원들이 높은 도덕관과 절제력으로 무장되어야 했다. 미국 공화국을 만든 다섯째 성경적 사상은 바로 국가의 흥망과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섭리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모든 국사는 결국 나라와 민족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신념이다.

성경으로 미국을 다시 세운 링컨

미국 대통령 중에 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일상에 적용했던 사람은 단연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다. 아메리칸 대학의 다니엘 드라이스바흐(Daniel Dreisbach) 교수에 따르면 링컨은 성경의 문맥과 운율과 어법을 완전히 통달했다고 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연설인 1863년 게티즈버그 연설도 시편 90편의 맥락과 표현을 빌렸으며, 두 번째로 유명한 1865년 2차 취임식 연설에서도 불과 700단어의 연설 속에 성경 구절을 최소 네 개나 인용하며 하나님을 14번, 기도를 3번 언급했다. 그 외에도 링컨은 임기 중 연설 등에서 최소 77회 성경을 직접 인용했다고 한다.

공식 연설이 아니더라도 링컨은 언제나 성경을 곁에 두고 매사를 성경으로 해석하며 일상에 적용했다. 링컨의 공화당을 탈당해 새로운 정당(Radical Democratic Party)을 창당한 존 프레몽(John C. Fremont)의 유세현장에 불과 400명이 모인 것을 두고 링컨의 비서들이 조롱하자 그는 바로 사무엘상 22장 2절(“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가량이었더라”)을 인용하며 400명을 무시하지 말라고 야단쳤다.

링컨-더글라스 토론회

그는 심지어 농담도 성경을 인용했다. 링컨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던 1858년 스티븐 더글러스(Steven Douglas)와의 첫 토론을 시작하며 링컨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던 무리가 사울에게 옷을 맡겼던 것(행 7:58)을 빗대어 옆 사람에게 “내가 스티븐을 돌로 치는 동안 내 외투를 잡아주시오”라고 농담을 던졌다.

1864년 2센트 동전에 “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넣고 지폐에도 어떤 문구를 넣으면 좋을지 의논하는 자리에서, 링컨은 “은과 금(동전)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행 3:6)”라는 구절을 넣으면 어떻겠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링컨은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조차도 성경의 깊은 묵상을 통해 미리 예견했다. 링컨이 암살당하기 약 1년 전인 1864년 봄, 그는 신명기 3장을 계속 반복적으로 읽게 되었다고 어느 목사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같은 말씀을 주시는 것은 아닌지 묵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내 이렇게 고백한다. “백성의 죄로 인해 요르단을 건너지 못하는 것에 대해 모세가 하나님께 왈가왈부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내가 받은 약속을 보기 전 나라를 위해 쓰러지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으렵니다.” 결국, 링컨은 마지막 노예의 해방(1865년 6월 19일)을 보지 못하고 4월 15일 극장에서 암살당한다.

대한민국을 다시 세울 지도자는?

이처럼 링컨은 성경을 온몸으로 체화한 지도자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당시 아무도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노예해방을 이뤄냈다. 이를 위해 링컨은 노예해방을 기치로 한 새로운 정당(현 공화당)을 창당했고, 당시 미국 인구의 2.5%인 무려 75만 명의 목숨이 희생된 남북전쟁을 치러야 했다. 전쟁 중에도 오히려 ‘감사의 날(추수감사절)’과 ‘금식기도 및 국가 겸비의 날’의 전통을 다시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를 쉬지 않았다. 그렇게 미국인들은 링컨의 성경에 충실하고 감명깊은 연설을 통해 극심한 분열과 국난을 극복하고 다시 하나 된 미국을 재건할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링컨은 미국인들에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링컨이 말했듯이 그의 “관심은 하나님이 나의 편에 계신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성경을 한시라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했기 때문에 1861년 2월 대통령직을 위해 워싱턴으로 떠나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성공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나는 실패할 수 없다”라고 단언한 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링컨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과거 미국의 노예제와 다를 바 없는 김일성 노예체제가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그 어떤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론도 미국의 남북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분열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링컨과 같은 지도자의 등장을 기다리기보다 각자 개개인이 링컨과 같은 소양과 지도력을 갖추기 위해 전념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다름 아닌 성경을 가까이함에 있다. 민주공화국가의 흥망은 미국 건국 당시에 그러했던 것처럼, 국민의 ‘바이블 리터러시(Biblical Literacy)’에 달려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 3:16-17)

참고문헌

Clarence E. Macartney, Lincoln and the Bible (Abindon-Cokesbury Press, 1949)

Daniel Dreisbach, Reading the Bible with the Founding Fathers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Paul Kengor, God and Ronald Reagan (Harper, 2004)

Steve and Jackie Green, This Dangerous Book (Zondervan, 2017)

(이 글은 기독교세계관 월간지 <월드뷰> 2022년 1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