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성문화센터? 성교육이야, 성인샵이야?

‘성 문화(sex culture)’라 함은 단순히 성적활동을 넘어 성적 유희, 그리고 이를 통한 상업적 활동 및 의식화를 뜻하거나 연상시킨다. 국도나 고속도로 갓길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성인용품’ 간판과 유흥가의 네온라이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성 문화’는 적어도 ‘성 교육’과는 전혀 다른 의미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청소년에게 성교육이 아닌 ‘성 문화’가 따로 있을 수 있을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령 섹스토이를 팔거나 다양한 성교 체위 및 사용가능한 도구(?)들을 소개하고 보여주는 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그럴 수는 없다. ‘성인’과 ‘젖병’이 그렇듯, ‘청소년’과 ‘성문화’는 같이 붙어 있을 수 없는 조합이다. 어떤 변태(變態)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 곳곳에는 이미 정부의 막대한 지원 하에 ‘청소년성문화센터’가 버젓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2021년 12월 현황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전국 16개 시도에 57개소의 청소년성문화센터가 운영 중이라고 한다. 여가부는 이 외에도 ‘성인지 감수성,’ 성폭력예방’ 등의 이름으로 학교는 물론 정부기관과 일반 기업, 심지어 군대에까지 수많은 변태적 성교육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을 널리 운영 및 지원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하고 있고 유네스코 등 국제기관이 부추기고 있으며 한국에도 일부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국내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포괄적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의 내용도 들여다보면, 실제로 ‘성교육’보다 ‘성문화’에 더 가깝다. 생물학적 특징과 관계적 책임 및 부모 간 친밀함을 강조하는 기존의 성교육을 버리고, ‘전 생애에 걸친’ ‘성적 권리’와 ‘자기 결정,’ ‘성적 즐거움’과 ‘쾌락’ 및 ‘욕망’을 가르치고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나다움,’ ‘건강한 섹스,’ ‘세이프섹스’ 등의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포괄적성교육에는 ‘젠더 이해’가 추가된다. ‘젠더’란 성별이 생물학적 구분이 아니라 성적 역할(gender role)에 따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개념이다. 각 개인의 기분이나 결정에 따라 성적 지향과 정체성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LGBTQ+’ 정도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사실 알파벳 개수로는 한참 부족한 무한대의 ‘성 정체성’ 스펙트럼을 초래해 사실상 성을 ‘해체(deconstruct)’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 결과는 물론 가정과 사회의 붕괴다.

포괄적성교육을 비롯한 젠더 이데올로기가 실제로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최근 서구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성별불쾌감 급증 현상(Rapid-Onset Gender Dysphoria)’을 통해 들여다보고, 도대체 누가 왜 이런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것인지도 간략히 알아보자.

‘성별불쾌감 급증 현상’ (ROGD)

성별불쾌감 혹은 성별위화감(gender dysphoria)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해서 유발되는 스트레스를 말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사람이 스스로 여성이라고 인식하면서 느끼는 불쾌감이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인 DSM에서 과거 ‘성 정체성 장애(disorder)’로 분류했던 것이 2013년 개정판인 DSM-5에서 성별 불쾌감으로 재분류되었다.


원인은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작용도 있고, 매우 드문 경우 간성(intersex, 신체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성징을 동시에 갖는 발달장애) 등 생식기관의 선천적 기형에 의한 실제 불쾌증도 있다. 이에 대해 일부는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을 하여 자신의 신체적 성별과 다른 성별인 체하고 살아가거나, 혹은 호르몬요법, 수술 등을 통한 실제 성전환을 시도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대부분 성전환 과정의 심각한 부작용과 정신적 혼란 등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삶을 자처하게 된다.

문제는 과거 주로 남성 사이에서 이러한 불쾌감이 드문드문 호소되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어린 소녀들 사이에서 이런 증상을 호소하고 성전환을 시도하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브라운 대학의 교수이자 산부인과 의사였던 리사 리트먼(Lisa Littman) 박사는 2008년에서 2018년 10년 사이 성별불쾌감 진료 건수가 스웨덴에서는 약 1,500퍼센트, 영국에서는 무려 4,000퍼센트나 급증했다며, 이를 ‘성별불쾌감 급증(Rapid-Onset Gender Dysphoria, ROGD) 현상’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인터넷을 매개로 한 또래집단 전염’으로 잠정 진단했다. 소녀들의 성병불쾌감 증가가 자연적인 현상이거나 그들이 실제로 신체적인 성별불일치를 경험한다기보다, 사춘기를 겪는 소녀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트랜스젠더 사례들을 접하고 따라하면서 또래 압력 등의 기재를 통해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특정 행동 양식이 전파되는 경우는 이미 많다. 예를 들어 작년에는 소녀들 사이에서 ‘틱 장애’ 환자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했는데, 그 원인은 뚜렛증후군을 앓는 유명 유튜버를 청소년들이 즐겨보며 틱 행위를 흉내 내는 것이 틱톡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이 드러났다. 우리나라에도 작년에 뚜렛증후군을 극복하는 환자로 자처한 유튜버(채널명 ‘아임 뚜렛’)가 큰 인기를 누리며 수십만 구독자를 확보하기도 했는데, 이는 동정심을 이용해 조회수 수익과 슈퍼챗을 노리는 자작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동정심이나 관심을 유도하는 행동을 따라하고 서로 간에 강화되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현상은, 특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또래 압력과 감수성, 그리고 신체변화에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리트먼의 연구는 물론 LGBTQ+ 커뮤니티의 과격한 반발뿐 아니라 이미 급진 좌경화된 학계 풍조로 인해 ‘트랜스혐오’를 조장하는 것으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2020년 리트먼의 연구를 바탕으로 성별불쾌감 급증 현상을 심층 조사한 아비게일 슈라이어(Abigail Shrier) 기자의 2020년 책 <Irreversible Damage(불가역적 피해: 우리 딸들을 유혹하는 트랜스젠더 열풍)>은 한때 대형 판로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주요 언론들이 무시하지 못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오히려 널리 대중화되었고, 실제 성별불쾌감을 호소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과 디트랜지션/디시스턴스(detransition/desistance, 성전환 과정을 멈추거나 다시 본래 성으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한 ‘탈트랜스젠더’들은 대부분 이 연구결과에 공감하며 동조하고 있다. 성별불쾌감을 겪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연대하는 인터넷커뮤니티(parentsofrogdkids.com)도 생겨났다. 이 사이트에는 단순히 성별불쾌감을 호소하거나 커밍아웃

한 자녀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인터넷커뮤니티에서 ‘그루밍’을 당해 급진적인 의사를 소개받고 이미 부모 몰래 가슴 제거 수술을 받은 자녀들, 부모와 절교하고 트랜스젠더 공동체로 떠나버린 자녀들,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못 이겨 자살한 자녀들 등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사례들이 무수히 공유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부모들의 이런 절규가 들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성별불쾌감으로 병원을 찾은 청소년 환자가 급증해 작년에만 8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국사회에도 이제 LGBTQ+ 콘텐츠가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대중매체에 범람하기 시작했고, 한국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할리우드 여배우 엘렌 페이지(Ellen Paige)가 가슴 제거 수술을 하고 ‘엘리엇’ 페이지로 활동하는 등, 동성애는 물론 트랜스젠더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경계심도 전무하거나 오히려 익숙하고 친근한 상황이다. 게다가 메타버스 등 가상세계의 상업화와 대중화가 빠른 한국사회의 아이들은 위와 같은 ‘인터넷을 매개로 한 사회적 전염’에 더욱 취약하다. 부모와 자녀 간의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긴다면, 젠더 이데올로기와 그 치명적이고 불가역적인 파괴 열풍이 그 틈을 메꿀 것이다.

이 ‘멋진 신세계’는 누가, 왜?

그렇다면 이런 파괴적이고 사악한 이데올로기를 누가, 왜 퍼뜨리는 것일까?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1932년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를 보면, 7세 어린 남녀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로 성 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그려진 전체주의 세계정부는 인류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아이들을 성애화하여 쾌락에 중독시키고 모든 가족관계를 말살시킨 것이다. 가족이 없으니 사익추구나 개별적인 전통이 있을 리 없고 서로 간 갈등이나 불만도 없다. 모든 인간 욕구는 물질적, 관능적인 것으로 환원되어 프리섹스나 ‘소마’라는 마약으로 충족된다. 모두가 성을 자유로운 ‘문화생활’로 즐기는 것 같지만, 사실 성은 가족과 함께 해체된 것이고 사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눈과 귀의 자극과 외식(外飾)으로 인해 영혼이 피폐해지고 도덕이 소멸되어 인류의 전체주의적 위험을 망각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공포와 기만이 지배하는 조지 오웰의 <1984>보다 말초적인 자극과 욕망이 지배하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더 가깝다. ‘소마’라는 마약을 전달하는 매개체는 소셜미디어와 대중매체이고 앞으로는 메타버스의 ‘실감나는’ 가상현실인 것이다. 모두가 모두(혹은 ‘최대 다수’)의 편의와 안전과 만족을 위하는 선한 동기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결국은 개인과 자유와 영혼이 사라진 전체주의 사회이다.


그런데 이 ‘성혁명(sexual revolution)’의 배경을 조금만 연구해보면, 그 동기도 결코 선하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일단 1960년대 성혁명의 이론가들과 주동자들은 거의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질서와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서구 경제사회영역에서의 혁명에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성혁명을 통해 서구문명사회의 기초가 되는 ‘남자와 여자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해체하려 한 것이다. 기존 마르크스주의가 경제이론의 탈을 쓰고 ‘경제적 생산수단’을 통제해 의식과 물질세계의 지배를 꿈꾼 것이라면, 이 ‘문화막시즘(cultural Marxism)’은 ‘문화적 생산수단’인 성과 가정과 공동체를 통제해 인간의 무의식과 영적세계까지 지배하려는 헤게모니 전략이다.

성혁명 젠더 이데올로기의 가장 최신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급진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로 문화막시즘의 일환이다. 1세대 페미니즘과 달리 2세대, 3세대 페미니즘은 사실상 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의 구분 자체를 부정하며 성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급진 페미니즘의 대표적 인물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의 <성의 변증법>(1970)을 보면 이러한 논법이 잘 드러난다.


경제적 계급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위계급(프롤레타리아)의 반란을 필요로 하듯이, 그리고 일시적 독재를 통해 그들의 생산수단을 점유해야 하듯이, 성적 계급의 제거 또한 하위계급(여성)의 반란과 생식기능의 점유를 필요로 한다. 이는 자기 신체에 대한 여성 소유권의 완전한 회복뿐만 아니라 인간 번식력에 대한 통제권의 (일시적) 점유를 말한다. 그것은 새로운 집단 생물학과 출산 및 아동양육까지 포함한다.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최종 목표가 경제적 계급 및 ‘특권’의 제거뿐 아니라 경제 계급의 ‘구분’ 그 자체였듯이, 페미니스트 혁명의 최종 목표 또한, 1세대 페미니스트 운동과 달리, 남성 특권의 제거뿐 아니라 [남, 녀] 성의 구분 그 자체의 제거가 되어야 한다.
인간 간 생식기의 문화적 차이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야 한다.... 페미니스트는 서구 문화의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질 뿐 아니라, 문화 자체의 조직과 더 나아가 자연의 질서까지도 의심해야 한다.

이 성혁명가들은 체제와 윤리도덕은 물론, 다름 아닌 자연과학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구문명과 근대질서의 뿌리가 되는 ‘유대-기독교 전통’에 대한 거역이자 반란이다.


1970년대 어느 은밀한 페미니스트-마르크스주의 모임에 참석했던 말로리 밀렛(Mallory Millett)에 의하면 참석자들이 종교의식처럼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무슨 혁명인가?” “바로 문화혁명이다!”

“어떻게 문화혁명을 일으키는가?” “미국의 가정을 파괴하면 된다!”

“어떻게 가정을 파괴할 수 있는가?” “일부일처제를 무너뜨리면 된다!”

“어떻게 일부일처제를 무너뜨리나?” “난교와 호색과 매춘과 동성애를 조장하면 된다!”

말로리 밀렛은 ‘페미-막시즘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성정치>(1970)의 저자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의 동생이다. 언니를 따라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다가 훗날 회심하고, 위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은밀한 구호를 폭로했다.


그런데 흔히들 잊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다. 바로 마르크스 본인도 애초부터 <공산당 선언>(1848)에서, ‘사적 소유’와 함께 “가족의 폐지”를 명시적으로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모든 영원한 진리의 폐지”와 “모든 종교와 도덕의 폐지”마저 주장했다. 문화막시즘과 그 원조인 마르크스주의는, 결국 본질상 반(反)기독교 문화운동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혁명적 운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선 안 될 이유가 여기 있다.


(이 글은 기독교 세계관 월간지 <월드뷰> 2022년 10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