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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세

미국의 국가정체성 위기

미국 정부의 연이은 초강경 대(對)중공(中共) 발언이 화제다.

지난 6월 26일 로버트 오브라이언(O’Brian)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공산당의 명백한 세계 공산화 야욕을 고발한 것에 이어, 7월 7일 크리스토퍼 레이(Wray) FBI 국장은 현재 미국에서 매 10시간마다 중국의 첩보공작 관련한 새로운 수사가 열리는 지경이라고 발표했다. 16일에는 윌리엄 바(Barr) 법무장관이 중공에 굽실대며 중국 선전에 협조하는 할리우드와 미국 기업들을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지난 23일,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의 지난 50년 중국 관여(engagement)정책이 리처드 닉슨 스스로 우려한대로 결국 ‘프랑켄슈타인’을 낳았다고까지 토로하며, 중국의 개방을 통해 체제변화를 유도했던 자유세계의 노력은 처절히 실패했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제 미국은 중공에 대해서 철저히 “불신하고 검증할 것”(distrust and verify)이며, 자유를 사랑하는 중국인들과 자유세계가 함께 중공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대 중공 입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중 간 ‘신 냉전’을 공식 선포한 것으로 평가받는 2018년 10월 펜스 부통령의 연설을 시작으로, 미국은 꾸준히 대중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중국 우한 발(發) 코로나바이러스와 중공의 무책임하고 불투명한 대처로 인한 전 세계 팬데믹 확산은 기존 대중 정책기조에 더 확고한 명분을 주고 있을 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긴 행진"론

그러나 중공의 강력한 역정보(disinformation) 공작과 여론전 이전에, 미국 스스로 보다 근본적인 국가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50년대와 60년대 뿌리내렸던 미국 내 극좌 혁명세력은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80년대 미국 보수주의의 화려한 부활로 잠재워지고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소멸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는 잠복기였을 뿐이었다. 그들은 지난 수십 년간 쉬지 않고 학계와 정부, 언론 등 각계각층으로의 “긴 행진” (네오막시즘의 대표적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장했던 “long march through the institutions”)을 통해 치열한 문화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산은 부시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당시 그 역풍으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오바마 진보정권 때 몸집을 키우고 2016년부터 트럼프 대통령 등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폭력 시위 배후에 있는 안티파(Antifa) 세력과 현재 걷잡을 수 없이 해외로까지 번지고 있는 Black Lives Matter 폭동이 그 일면이다.

“미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주장하는 미국 좌익

이들의 주장은 자극적 선동과 폭력적 혼란으로 짙은 연막이 쳐져 있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일관적이고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물론 상식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이며 비현실적이다. 이들은 남-녀-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가족질서와 자유시장 체제의 붕괴를 외치며, 미국의 건국역사를 부정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현을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유대-기독교 가치관과 “서구문명”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이 그 정신을 팽배하게 지배한다.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비상식적이고 모순적인 입장 자체보다도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에 미국사회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공화국의 종주국인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 근본이 되는 건국정신과 가치관을 상실하고 국가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미국 지식인층과 주류언론이 얼마나 근본 가치관을 잃어버리다 못해 국가정체성 파괴에 일조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뉴욕타임스의 <1619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8월 20일, 니콜 하나-존스(Nikole Hannah-Jones) 기자가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처음 미국 땅을 밟았던 1619년의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쓴 논설이 뉴욕타임스의 거대한 연속 논평시리즈물로 확대된 것이다.

1619프로젝트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진정한 시작”은 1776년 독립선언이나 1789년 헌법의 비준, 혹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의 플리머스 선착이 아니라, 1619년 흑인 노예들의 첫 도착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하나-존스 기자는 그래서 “미국의 DNA에 흑인 인종차별이 흐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자유공화정이 아닌 ‘노예정’(slavocracy)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인식을 주입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노예역사에 대한 사실을 환기시켜 반성과 고찰을 유도하려는 순수한 의도일 뿐이라고 언뜻 비춰질 수 있지만, 이들의 역사왜곡과 수정주의 역사관은 결코 과거에 대한 평가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의도는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다. 이들은 현대 미국의 모든 사회갈등과 불평등 및 차별의 문제들이 결국 노예제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한다. 이 프로젝트의 몇 개 칼럼의 주제들을 보면 그 인식이 현저히 드러난다.

“미국 자본주의는 잔인하다. 그 원조는 (흑인 노예들이 일했던) 농장이다,” “미국에 보편 의료보장이 없는 이유: 인종(노예제),” “교통체증의 원인: 인종차별,” “미국 감옥의 잔인함은 노예제의 결과.”

이런 식이다.

이는 “친일파가 세운 나라”를 외치며 모든 사회 문제를 구조의 문제와 대한민국의 체제 근본뿌리로 몰고 가 모든 질서와 체제의 혁명을 주장하는 한국 좌파의 역사관 및 현실인식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가히 미국판 ‘반일 종족주의’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사실관계를 왜곡해 자학적이고 수정주의적인 역사인식을 조장하고, 이를 “차별금지,” “평등,” “인권”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된 대중선전선동의 콘텐츠로 개발체제의 근본을 흔드는 것은 네오막시즘(neo-Marxism)의 전형적인 문화전쟁 방법론이다.


대표적인 탈출노예 프레드릭 더글라스

무엇보다 독립 당시 대부분의 국부들이 노예제에 찬성하고 있었다는 그들의 주장 자체가 거짓말이다. 당시 북부주 대표들은 물론이고 남부주 대표들도 노예제를 언젠가는 철폐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노예문제에 대한 그들의 논의는 노예제 폐지의 시기조절과 방법에 있었지 그 당위성에 있지 않았다. 토마스 제퍼슨도 본인의 농장에서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가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라고 독립선언서에 썼을 때 그 “모든 사람”은 흑인들을 포함한 것이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이루어 냈을 때도 그는 미국의 독립과 건국정신에서 그 명분을 찾았다. 당시 링컨과 함께 노예제폐지를 외쳤던 모든 운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으로 흑인노예들의 실태를 고발해 노예제 폐지운동의 불씨를 붙였던 대표적인 탈출노예 프레드릭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s)도 미국의 헌법을 “영광스러운 자유의 문헌”이라고 찬양했다. 또 ‘지하철도’(당시 미국의 교회들이 구축한 흑인노예들의 탈출루트 네트워크)를 이용해 70여명의 노예들을 구출하고 “모세”라는 별명을 얻었던 탈출흑인여성 해리엇 툽먼(Harriet Tubman)도 제퍼슨의 독립선언서를 종종 인용했다.

흥미로운 것은 1619프로젝트에 이런 위대한 흑인들과 그들의 업적들은 거의 생략되거나 아주 짧게 다룰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흑인들을 무기력한 피지배적 희생양으로만 묘사해 피해의식(victim mentality)에 사로잡히게 하며 감정적인 분노만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구호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논리는 뿌리 깊게 인종차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19프로젝트의 칼럼들은 재생산되어 학교 커리큘럼에서 채택되고 주류사회와 의식에 확산되면서 왜곡된 역사관이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급기야 1619프로젝트는 올해 5월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 소설부문이 아니라 논평부문이다.


동상들을 훼손하는 BLM시위자들

1619프로젝트의 파괴적인 영향력은 금번 Black Lives Matter (BLM) 시위에서 드러나고 있다. 시위참여자들은 국부들이 실제로 모든 국부들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고 굳게 인식하고 있고, 심지어 노예해방을 이루어 낸 링컨을 포함한 미국 전역에 있는 미국 국부들의 동상들과 기념물을 파손하고 있다. 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의 찰스 케슬러(Charles Kessler) 교수는 한 논평에서 BLM 폭동을 “1619 폭동”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쓰기도 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

이들이 1619년에 중점을 두는 것도 생각해보면 숨은 의도가 있다. 이들은 20-30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한 것이 1619년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도 엄격하게 따지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노예들은 그보다 최소 수 십년 전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 탐험가들에 의해 지금의 플로리다 지역에 들어왔다. 또한 원래 미국 땅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도 있었기 때문에 ‘흑인들의 도착’을 미국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사실 매우 인종차별적이고 편협한 입장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1619년을 콕 집어서 “미국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다음해인 1620년의 메이플라워호 도착, 청교도들의 미국 정착이 미국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유대-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서구문명의 부정이다.

미국 사회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본연의 건국정신과 자유민주, 공화주의적 국가정체성을 상기하고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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