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지난 미국 중간선거의 의미와 교훈

미국 국민은 매 2년마다 정부를 심판할 기회를 갖는다. 선출제 아래 있는 행정부와 상하원 입법부는 각각 서로 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4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와 그 사이에 있는 중간선거를 통해 국민의 직접적인 견제도 한번 더 받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했던 미국 국부들의 놀라운 혜안과, 그들이 제정해 25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미 헌법의 천재성에 매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


기대했던 ‘레드웨이브’는 어디로?

중간선거는 특히 역사적으로 2년 전 정권을 잡은 대통령과 여당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거의 집권 후 첫 중간선거에서는 항상 야당이 표를 휩쓸며 집권여당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왔다. 지난 백년 동안 단 세차례를 제외하고는 집권여당은 중간선거에서 언제나 상원 의석을 잃거나 하원 의석 10개 이상 잃어 왔다(1934년 민주당 루즈벨트, 1962년 민주당 케네디, 2002년 공화당 부시). 또한 이번처럼 집권여당이 첫 중간선거에서 주지사직을 잃지 않고 오히려 얻은(2석) 경우는 1934년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현재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범죄율, 불법이민자 폭증, 각종 급진 좌파 정책 기조 (결혼의 재정의 시도, 젠더이데올로기 어젠다 반영 등), 성급한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인한 국민적 원망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번 바이든과 민주당의 뜻밖의 선전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국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70퍼센트 이상이고,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0퍼센트 미만이었던 선거 직전 상황에서 집권여당이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은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공화당 패착의 원인은?

먼저 직관적으로는 지난여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낙태 합법화 판결을 뒤집은 연방대법원의 ‘돕스 대 잭슨(Dobbs v. Jackson)’ 판결이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 기혼 남녀와 미혼 남성의 평균 표심은 공화당측으로 기운 반면(각각 20%, 14%, 7%), 미혼 여성의 표심만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향한 것(37%)을 볼 때 지난 대법원의 결정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패배한 주요 공화당 후보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보다 근본적인 공화당의 한계가 관측된다. 바로 지난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발탁하고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 캠페인의 슬로건) 세력이 결집해 일방적으로 꽂아 넣은 후보들이 거의 다 패배한 것이다. 또한 트럼프와 함께 지난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한 후보들도 대거 패배했다. 단, 트럼프의 지지와 더불어 자기 스스로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역량을 증명한 후보들은 나름 선전했다. 예를 들어 주류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미 중부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려낸 베스트셀러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로 유명세를 탄 포퓰리스트 J.D. 밴스의 경우에는 오하이오 주 상원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에 분명한 선을 긋고 거리를 둔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 등도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별다른 역량의 검증이나 자신만의 메시지가 없이 오로지 트럼프의 지지만 등에 업고 나선 후보들은, 충분히 승산이 있었던 대결에서조차 모두 중도층의 표심을 얻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최대 경합주 중에 하나였던 펜실베이니아에서 민주당의 후보로 나온 존 페터맨은 불과 6개월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심각한 뇌손상을 입은 인물로, 실제 토론 자리에서 필름이 끊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극히 평균 수준의 공화당 후보만으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었던 상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발탁해 상대 공화당 후보로 밀어 넣은 메흐멧 오즈는 비록 외과의사 출신의 인지도도 있는 억만장자 TV 호스트였지만, 정치적 역량이 검증된 것도 아니고 심지어 펜실베이니아 출신도 아니었다.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오즈는 20만 표 이상의 차이로 패배했고, 같은 주에서 트럼프의 부정선거를 주장했던 더그 마스트리아노 주지사도 민주당에 자리를 내주었다.

결국 미국민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나라를 ‘말아먹는’ 바이든과 민주당을 마땅히 견제했지만, 동시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 선거불복 및 1월 6일 의회난입 폭동으로 대표되는 그의 ‘극성’ 팬덤도 함께 견제하고 심판한 것이다. 즉, 미국 국민 평균은 2년 전 트럼프의 옛 MAGA 세력이 아닌, 새로운 메시징과 브랜딩으로 포장되고 충분한 역량이 검증된 후보만을 민주당의 대안으로 선택했다. 즉, 이번 선거는 트럼프 MAGA 상품이 가진 확장성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과, 쉴 새 없이 계속되는 트럼프의 아집(我執)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피로감이 특별히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간과할 수만은 없는 선거 불신의 증폭

또한 2020년 대선의 연장선상에서 계속된 공화당 지지층의 선거 불신과 그로 인한 사전투표율 부진도 공화당 지지 민심을 선거결과에 충분히 반영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실 선거 불신을 주장하는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핑계로 성급히 추진된 사전 우편투표의 상식을 벗어난 확대는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선거 현상을 초래하고 있고, 초접전 경합주인 네바다 주 개표 중 8시간동안 CCTV가 꺼진 일, 아리조나 주 최대 지역구인 마리코파 카운티의 경우 30퍼센트의 개표기가 오작동하여 당일투표자들도 간접적으로 투표하거나 기다리다 지쳐 그냥 돌아가는 해프닝 등은, 수많은 선거관리 부실과 선거부정 시비의 빌미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선거 당일 밤이나 늦어도 다음날이면 알 수 있었던 선거결과가 선거일 몇 주 후에도 불투명한 어처구니없는 이번 상황은 분명, 사전 우편투표 및 일부 주가 시행하고 있는 투표용지 집단수거(ballot harvesting) 제도의 전면적인 제고와 시정을 요구한다. 게다가 누가 봐도 불완전하고 의심의 빌미를 제공하는 선거관리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합리적인 목소리를, 막연히 여타 회자되는 음모론으로 취급하거나 가짜뉴스로 낙인찍어 공론화와 논의 자체를 억누르는 행태는 유권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침해하는 처사다.

하지만 불완전한 선거제도와 관리부실을 인지하면서도 참여하며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것과, 선거의 완전 무결성을 고집하며 불참을 조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불참한다고 선거가 멈추는 것도 아니고, 상대편의 승리를 막는 것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 주의 선거부정 시비를 이유로 결선투표를 치러야 할 조지아 주 상원 선거를 차라리 보이콧하라고 주장했고, 결국 이길 수 있었던 상원 두 자리를 민주당에 내주며 공화당이 상원 과반석 확보에 실패하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그러나 공화당은 불과 2년 전 그 뼈아픈 경험을 교훈삼지 못하고 사전 우편투표 독려에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은 사전 우편투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투표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트럼프가 아닌 대안은?

이번 선거에서 ‘레드웨이브’가 있었다면 단연 플로리다 주였다. 이전 주지사였던 릭 스캇 현 공화당 상원의원이 최대 4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던 전적에 비해, 현 주지사 론 드산티스는 무려 20퍼센트 포인트에 달하는 차이로 민주당 후보를 누르며 플로리다를 완연한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선거 직후 공화당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를 묻는 첫 여론조사에서 드산티스는 처음으로 트럼프를 앞지르게 되었다. 전국 여론조사에서 드산티스가 트럼프의 지지율을 넘어선 것이 처음일 뿐 아니라, 2016년 2월 이후 트럼프가 공화당 타후보에게 1위 자리를 내어준 것도 처음이다. 공화당 지지율의 바로미터가 되는 텍사스 주의 여론조사에서도 처음으로 드산티스의 지지율이 트럼프를 넘어섰다.

트럼프가 자랑하고 있듯이 4년 전 하원의원으로 주지사직에 도전해 고전하고 있던 드산티스를 승자로 끌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와 MAGA 지지층이었다. 그러나 드산티스는 이를 발판삼아 지난 4년 동안 플로리다에서 놀라운 행정력뿐만 아니라 보수주의 정치인으로서의 확고한 가치관과 리더십을 추가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플로리다의 대표 빅테크 대기업인 디즈니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관료들의 노골적인 젠더이데올로기 어젠다에 맞서 드산티스는 보수주의적 가치관을 성공적으로 지켜냈고, 전통적 가정 중심의 사회 기능과 교육 환경에서의 학부모의 권리, 생명 중시(낙태 반대) 기조,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기독교적 바탕과 근간 등을 앞장서서 수호하고 있다. 또한 플로리다를 연이어 강타한 허리케인 등 각종 자연재해에도 현장 친화적인 공감능력과 뛰어난 지휘력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지난 3년여 트럼프 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과도한 코로나19 방역조치와 백신접종 의무화를 전개할 때, 드산티스는 플로리다 주를 정부의 과도한 간섭으로부터 개인 자유가 침해받지 않는 ‘세이프헤이븐’으로 만들어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고, 경기 침체도 없이 오히려 코로나19 피해도 상대적으로 적은 결과를 얻어 보수 진영의 큰 호감을 얻은 바 있다.

트럼프가 아닌 공화당의 대안으로는 드산티스 외에도, 지난 15일 회고록 <So Help Me God>을 펴내며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마이크 폼페오 전 국무장관, 데드 크루즈 상원의원,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 등이 있다. 따지고 보면 2024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뛸 수 있는 인물은 대부분 트럼프 행정부 내지는 MAGA 지지층이 가진 운동력의 기반에서 성장한 후보들이다. 이들이 트럼프와 완전히 척을 지고 무대에 나설 수는 없다는 뜻이다. 만약 2016년 경선 당시처럼 트럼프가 자신이 탈락하면 아무도 지지하지 않고 선거를 보이콧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사실 답이 없다. 그만큼 트럼프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요즘 말로 ‘미친 존재감’이다. 이 정도면 사실 트럼프는 본인 스스로 자신이 그토록 갈아엎고자 했던 강력한 워싱턴 기득권(“establishment”)이 되어버린 셈이다.

보수 정치의 정도(正道)를 다시 찾아야

실제로 공화당의 어느 누구도 개성이 워낙 강한 트럼프의 후광을 능가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특히 트럼프의 두터운 MAGA 세력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흡수하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소외된 중부 백인 노동자들의 민심을 아우를 수 있는 일종의 ‘트럼피즘(트럼프식 포퓰리즘 및 친화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를 통해 트럼프의 MAGA 구호가 정치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도층에게 확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제 공화당은 어쩔 수 없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의 발판을 다지기 위해 트럼프와 그 지지 세력을 등지지 않으면서도 드산티스를 비롯한 새로운 인물과 운동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이미 시작된 공화당 경선 레이스에 주목하는 이유다.

물론 바이든과 민주당이 이번 선전에 고무되어 지금까지의 급진좌파 정책 행보를 계속한다면, 2024년에 트럼프는 물론 공화당에서 누가 나오더라도 민주당은 집권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이든은 이미 최고령 미 대통령으로 이번 달에 만 80세를 찍었고,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민주당원들조차 내후년 바이든이 연임에 도전하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에 그를 마땅히 대체할만한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역대 가장 존재감 없는 부통령 중 하나로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뼈아프게 나타나듯이 유권자의 선택은 상대의 비호감만을 근거로 보장될 수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의 대안으로 미국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공화당 후보 스스로의 메시징과 상품화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공화당이 트럼프라는 자극적 카드를 오래 끌고 갈수록 이미 양극화된 미국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더욱 심화될 것이 뻔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공화당의 지속가능한 전략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인간 스스로의 자기파괴와 자기숭배의 경향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경계해야 하는 보수주의의 길도 아니다.

보수의 정도는 역시 과거나 현상을 ‘싹 갈아엎는’ 혁명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기존의 불완전한 것을 조금씩 뜯어고치는 개혁이다. 그 정치는 영국의 보수주의 철학자 마이클 오크쇼트가 말했듯이, ‘이상의 추구’가 아닌, 은근한 ‘암시의 추구(pursuit of intimation)’이며,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가 설파했던, 질서를 존중하는 중용(moderation)의 자세다. 물론 민주당의 사회 근간을 흔드는 급진적인 정책기조와 망국적인 행보를 눈앞에 두고 보면, 아주 뿌리째 뽑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지난 2016년 트럼프의 등장처럼 기존의 침체된 판을 뒤흔드는 도발적이고 신선한 환기를 필요로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1월 6일 저녁 난장판이 된 의회에서 트럼프의 절친 린지 그래험 상원의원이 탄식했듯이, “우리 모두 트럼프와 함께 짜릿한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렇게 끝나는 게 너무 싫지만, ... 이만하면 됐다. Enough is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