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크리스천의 정치참여에 관한 책 소개

정치성향이 서로 확인되고 충분히 공감된 사이가 아니라면, 정치이야기는 쉽게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각에 차이가 있을 경우, 언쟁을 통한 논리의 충돌과 종종 감정의 충돌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회에서 정치이야기 하는 거 아니야” “교회는 중립을 지켜야 해” “교회는 정치적이면 안돼” 등등의 충고는 우리가 종종 듣는 소리다. 복음이라는 영원분멸하고 극히 본질적인 메시지가 전해져야 하는 시공간에서 정치 ‘따위의’ 현세적 논쟁이 ‘물을 흐리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는 성도의 삶 구석구석과 교회의 매사 행정 모든 부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정치는 과세와 각종 규제의 문제는 물론이고 때로는 우리의 말과 행동, 심지어는 생각과 의식에 제약을 거는 문제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성도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형벌(penalty)로부터 자유하지만 죄의 권세(power)와 죄의 실존(presence)으로부터 자유하도록 끊임없이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현세의 정치를 포함한 인간사의 많은 과정들은 우리가 때로는 견디고 때로는 극복하며 때로는 맞서 싸워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다. 어쩌면 “너무 정치적이야”라며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도록 유도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정치적인’ 소리일 수 있다.


정치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와 일부 언론을 통해 그렇게 오명이 씌워지기는 했지만 정치는 그 단어의 뉘앙스가 풍기는 것처럼 ‘추악하고 더러운 것’이 아니다. 국가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온갖 모략과 중상을 꾀하는 권모술수는 정치의 변질된 일부분일 뿐이지 정치의 전부나 주된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또한 선거나 투표자를 두고 다투는 정당정치를 의미하는 것만도 아니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정부와 시민 간 역할의 계약관계 설정부터 시작해 각각의 권리와 책임의 분담을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세계관으로 보는 정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기독교세계관을 창조-타락-구원이라는 선교적 관점으로 정의한다면, 정치란 “창조된 인간 개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받고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는 가장 최적의 국가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결국 크리스천이 보는 바람직한 정치는, 인간 개인이 현세의 국가사회를 살아가면서도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의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거나, 최소한 그 영원한 것을 전하는 교회나 가정, 전통과 같은 매개 활동에 장애물이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금번 [월드뷰] 11월호 주제인 “크리스천의 정치참여”에 관한 책갈피는 이런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를 다루는 동시에, 모호하지 않은 분명한 성경적 세계관을 나타내는 책들(물론 성경 다음으로)을 추천하고 싶었다. 그렇게 추리다보니 결국 최종 목록에 남은 책은 네 권 중 세 권이 고전이었다. 다행히 현대 정치현안도 다루는 책이 한 권 있지만 이 책은 한국어로 아직 번역이 안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크리스천의 정치참여를 논하는데 빠질 수 없는 매뉴얼과 같은 책이어서 최종 추천도서에 포함을 시킨다. 이 책도 이번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인 김승규 변호사님의 번역으로 곧 출간될 것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크리스천의 정치학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제일 먼저 소개하자면, 이미 한국에도 저명한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의 <Politics according to the Bible> (성경에 따른 정치)이다.


Wayne Grudem, <Politics according to the Bible> (Zondervan, 2010)


웨인 그루뎀(1948~ )은 신학자라면 모를 수 없는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이다. 하버드에서 경제학 학부를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M.Div)와 박사(D.D)학위를, 또 캠브리지 대학에서 신약학 박사학위(Ph.D)를 받은 석학이기도하다. 28년 동안 시카고 소재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 유명한 ESV 스터디바이블의 편집장이기도 했다. 그의 조직신학 책은 이미 번역되어 많은 신학교에서 전공서로 참고되고 있다.


웨인 그루뎀은 이 책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 삶 모든 영역의 길잡이로 주셨다고 확신한다. 정부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라도 말이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썼다.” 그루뎀은 또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의 관점과 정치적 시각들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결과 그의 논조는 대체적으로 “보수주의적”이지만, 사안에 따라 공화당을 비판하거나 민주당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으며, 책의 목적 자체는 보수주의적 입장이나 리버럴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이해하는 “정치, 법, 그리고 정부에 대한 성경적 세계관과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부. 기본 원리

1장. 크리스천과 정부에 대한 다섯 가지 잘못된 관점

2장. 더 나은 대안: 정부에 대한 효과적인 크리스천 영향력

3장. 정부에 대한 성경적 원리

4장. 성경적 세계관

5장. 법원과 국가 최종권력에 대한 문제

2부. 구체적인 현안

6장. 생명의 보호

7장. 결혼

8장. 가정

9장. 경제

10장. 환경

11장. 국방

12장. 외교

13장. 표현의 자유

14장. 종교의 자유

15장. 특정 세력

3부. 최종 견해

16장. 언론편향의 문제

17장. 오늘날 민주당과 공화당에 적용

18장. 신앙과 일, 그리고 정치와 정부에 종사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기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정교분리 등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일반적인 오해를 푸는 것으로 시작해, 정치에 대한 성경적 관점과 원리를 분명하고 풍성하게 풀어낸 후 생명관과 결혼관, 가정관, 경제, 환경, 국방, 외교, 자유 등의 구체적인 이슈까지 성경적 세계관으로 하나하나 풀어내어 크리스천의 마땅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 언론 및 사회인식의 문제점과 미국 정당정치에서의 적용점, 그리고 크리스천과 교회의 역할 및 전망까지 다룬다. 제목 그대로 “성경에 따른 정치”를 총망라한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부의 “다섯 가지 잘못된 관점”과 “성경적 정치원리”는 현재 우리나라에도 매우 큰 시사점이 많다. 여기서 관찰된 다섯 가지 오해는 다음과 같다. a) 정부는 종교를 강요해야 한다. b) 정부는 종교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c) 모든 정부는 사악한 마귀의 영역일 뿐이다. d) 정치 말고 복음전도를 해라. e) 복음 전도 말고 정치를 해라. 그루뎀은 이 다섯 가지 흔한 오해들을 하나하나 성경을 근거로 바로잡는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크리스천의 마땅하고 건전하며 유효한 정치참여를 매우 체계적으로 사례를 들어가며 풀어낸다. 또한 성경에 따른 공화주의 원칙들 – 정교분리, 삼권분립, 개인의 존엄과 자유, 대의정체, 민주제 등 –을 하나하나 설명해 낸다.


2부의 특정 현안들도 정부역할의 각 영역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성경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사례와 근거 데이터 및 정책들이 미국 중심이라 한국정치로의 즉각적인 적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크리스천의 과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히 생명관, 결혼관, 가정관, 환경, 국방 등의 이슈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매우 적용점과 함의점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제약은 전체 약 6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양장본으로 휴대가 어렵고 사실 대중서적이라기 보다는 대학 전공서적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형태로 출간될지 모르지만 원서는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노트테이킹을 할 수 있도록 넓은 여백도 있다. 하지만 정치가 교회와 성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치밀해지고 집요해지는 현시대에 꼭 필요한 참고서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크리스천은 아니더라도, 모든 목회자와 신학생, 크리스천 정치인, 그리고 정치에 관심이 있는 크리스천들에게는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모든 신학교는 이 책을 기초로 하는 “성경과 정치” 강좌를 개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도 동성애, 낙태, 결혼 등 특정 이슈를 다루는 기회가 있을 때 이 책을 참고하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두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크리스천 정치참여의 실전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정치강령>이다.


아브라함 카이퍼 지음, 손기화 옮김, <아브라함 카이퍼의 정치강령> (새물결플러스, 2018)


이 책은 다행히 작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저자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는 우리에게도 너무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나님의 영역 주권”을 설파한 칼뱅주의 개혁신학자이자 목사였고 1901년부터 1905년까지 네덜란드의 수상을 역임한 “반혁명당(Anti-Revolutionary Party)” 정당 창시자였다. 또한 신문사를 창립한 기자이기도 했고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의 신학 및 정치 관련 저작과 활동은 한사람이 했다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활발했다.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이라 불릴 정도다.


이 책은 1879년에 그가 집필한 <Our Program> (우리의 정강)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장 우리의 운동

2장 권위

3장 하나님의 법

4장 정부

5장 세속 국가는 없다

6장 “하나님의 은총으로”

7장 정부 형태

8장 헌법

9장 대중적 영향력

10장 예산안 거부

11장 분권

12장 국가와 내각

13장 교육

14장 사법 제도

15장 공공질서

16장 공중 보건

17장 재정

18장 국가 방위

19장 해외 재산

20장 사회적 질문

21장 교회와 국가

22장 정당 정책

결론

카이퍼는 반혁명당을 창당하면서 이 책을 썼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이란 1789년 프랑스혁명의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즉, 카이퍼의 반혁명당은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된 인간이성을 기반으로 한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자유와 권리 및 평등의 정신에 반대하고, 신의 섭리에 기초한 자유와 질서를 호소했다. 성경의 원리, 특히 칼뱅주의적 세계관을 근거로 시도한 개신교정당이었고 카톨릭과 연합해 무신론 세속정치에 대항하는 전략으로 정당을 창당하고 결국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그렇지만 동시에 신정국가나 국교도 반대했다.


그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보수주의자도 역시 프랑스 혁명에서 발생된 세계관의 세속적 산물이라고 여겼으며 그는 대안적으로 신칼뱅주의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또 이 책에서 그는 네덜란드가 16세기 스페인의 폭정에 대항한 “기독교적” 자유 투사들의 국가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세속국가와 신정국가 모두 부정하지만, 네덜란드의 기독교적 뿌리를 상기시키고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유로운 개인과 교회와 국가를 설파했다. 그는 또한 “칼뱅주의 유토피아”를 경계했다. 반혁명당을 통해 펼치는 그의 국가적 실험이 완벽하거나 완벽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철저히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이 은혜아래 허락하신 주권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나오는 정부형태나 식민지 정책 등은 오늘날 적용할 수 있는 공감대를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 단순히 하나의 기독교적 정치실험 사례로 이해하고 덮는 것보다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특히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인정과 사람중심의 세속적 정치 부정,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진정한 자유와 질서라는 세계관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시대를 넘어 계승해야 하는 영원한 가치와 전통이다.


또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주목할 것은 그가 이러한 성경적 세계관을 네덜란드 민족의 공통된 유산과 정치적 실정에 맞게 풀어서 대중을 설득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가 가진 진리를 확신했고 누구보다 신앙이 투철했지만 결코 독선과 오만으로 자신의 의를 펼치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과 당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를 견지했고, 오직 건전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위한 논의의 장을 펼치는 것으로 선을 지켰다. 진리를 먼저 가진 우리 크리스천들일수록 더 함양해야 하는 품성이다.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널리 읽히는 기독교 변증작가 C.S. 루이스의 <인간폐지>이다. 2006년에 한국어로 이미 출간되었지만 마침 올해 초 새 디자인과 편집의 개정판이 나왔다고 한다.


C.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인간 폐지> (홍성사, 2019)


아마 C.S. 루이스(1898~1963)의 삶과 저작들을 아는 분들이라면 조금 의아해 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루이스는 정치참여나 정치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치밀한 논리의 기독교 변증과 분명한 표현력, 아름다운 문체, 그리고 J.R.R 톨킨과 더불어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어마어마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한 것으로 잘 알려진 루이스는, 짧은 여러 에세이들을 통해 특정 이슈들(핵전쟁, 형법, 평화주의, 기독교정당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정치적으로 분류되는 것을 피했다. 영국의 보수당이 재집권한 1951년 윈스턴 처칠 수상이 대영제국의 훈장을 수여했을 때도 루이스는 정치적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정당정치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지 몰라도 매우 분명한 정치철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견해를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 신중하고 치밀하게 반영해놓았다. 사실 그는 그의 문학작품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그의 일관된 정치철학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독자의 무의식중에 전파하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이스가 정치에서 무엇보다 가장 신경 써서 고수하려고 했던 것은 자연법, 혹은 “도덕률”이다. 즉 “정치적인 것 안의 영원한 것 (the permanent in the political)”에 언제나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이것은 루이스의 <인간폐지>와 <그 가공할 힘>에 비교적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가공할 힘>은 <인간폐지>의 주제를 공상과학 소설의 형태로 풀어낸 것임으로 꼭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인간폐지>의 목차는 단순하다.

1장. 가슴 없는 사람

2장. 도

3장. 인간 폐지

<인간폐지>의 또 다른 제목은 <중고등학교 영어교육을 통해 보는 교육에 대한 고찰> (Reflections on Educat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Teaching of English in the Upper Forms of Schools) 이다. 당시 영국에서 새로 나온 중학교 영어교재 (“녹색 책”)에서 학생들에게 은연중에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한 루이스는, 관련 내용을 더럼대학에서 강연하고 이를 책으로 엮었다.


루이스는 1장에서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상대주의를 “절대적으로” 강요하는 현대교육 커리큘럼과 서술을 강력히 비판하며, 이러한 상대주의가 결국 “가슴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고 경고한다. 2장에서는 동양철학의 “도(道, Tao)”를 이야기하며 자연법의 초월성과 절대성, 그리고 그 인류 보편성을 증명한다. 동서고금을 넘어 인류를 초월한, 모든 가치판단의 원천이 되는 어떤 절대적 질서 혹은 “첫째 원리” 혹은 “자연법” 혹은 “전통적 도덕”을 “도”의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다.


3장에서 루이스는, 인간이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임으로서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는 절대성을 포기할 때, 결국 인간 스스로 인간됨을 포기하는, 즉 스스로 “폐지”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루이스는 현대과학의 발달과 근대정치의 세속화가 자연법 전통을 거부하는 강한 경향을 갖고 있음을 우려했다. 그리고 가치의 절대적 기준인 그 도덕이 약화되었을 때, 결국 그 사회문화의 공백을 도덕적 허무주의가 차지하고 그 국가사회는 전체주의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루이스는 20세기 절반을 나눠먹은 나치독일과 공산주의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절대적 도덕의 매개역할을 하는 교회와 가정을 파괴해 개인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어렵게 만드는 근대의 과학적 물질주의자들과 관료들은 자유민주주의에도 성행하고 있음을 경고하고자 했다.


루이스의 <인간폐지>와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치관은 정치참여를 이야기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선 첫째로 정치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고후4:18), 썩어질 것과 썩지 않을 것(벧전1:23)을 분별하는 것이다.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를 포함한 모든 작품에서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를 독자들이 항상 의식할 것을 의도했다. 세상 문화와 풍속이 그렇듯 정치도 우리의 영적 의식을 우둔하게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정치는 보이는 세상의 것일 수 있지만 정치가 관여하는 개인은 영적인 존재다. 정치가 보이지 않는 개인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그것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분별하는 것은 크리스천의 의무다.


두 번째로 크리스천은 정치가 우리의 영적 의식을 우둔하게 하고 도덕을 파괴하려 할 때 이를 분명히 나서서 차단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소위 “정치적 중립”을 고집했던 루이스도 물질주의적 상대주의가 특히 의식이 발달중인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침투하는 것을 보고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강연과 라디오방송을 통해, 또 책을 통해 물질주의자들의 의도를 완강히 거부했고 본인 특유의 방법인 문학으로 치밀하게 반격했다. 그는 끝까지 비정치적으로 남았지만 그가 미친 정치적 영향력은 위대하다. 루이스의 <인간폐지>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이런 넓고 깊은 의미의 “기독교 정치적” 의도를 파악하며 다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크리스천의 정치참여 관련 마지막으로, 사실 가장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은 이승만의 <독립정신>이다.


이승만 지음, 박기봉 교정, <독립정신> (비봉출판사, 2018)


이승만(1875~1965) 대통령이 1904년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은 단연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필독서이지만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사실 워낙 위대한 걸작이라 한국인에게 따로 추천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물론이고 크리스천들도 읽어보거나 내용을 알지도 못하고 있다.


이는 문체가 구식이기도 해서 시의성이 없다고 치부되거나 혹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비롯된 결과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여부를 떠나서, 이승만이 20대 청년 때 감옥의 취약한 환경에서 쓴 이 <독립정신>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문 최고의 정치사상서이자 국제정세서이다.


51편의 짧은 글들을 엮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목차 전체는 지면을 너무 많이 할애해 생략해야겠지만, “크리스천의 정치참여”에 대해 특히 의의가 있는 부분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서문

제2차 발간 서문

1장. 총 론

2장. 사람마다 자기의 책임과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3장. 자신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 화를 당한다

4장. 백성이 힘써 노력하면 될 것이다

5장. 참으로 충성하는 근본

6장. 마음속에 독립을 굳게 해야 ....

9장. 백성이 깨이지 못하면 나라를 보전할 수 없다

10장. 자주 권리는 긴요하고 중대하다 ....

15장. 세 가지 정치제도의 구별

16장. 미국 백성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

17장. 미국이 독립한 역사

18장. 미국 독립 선언문

19장. 미국의 남북전쟁사

20장. 프랑스 혁명사

21장. 헌법정치의 효험

22장. 정치를 변혁하지 않는 것의 손해

23장. 정치제도는 백성의 수준에 달려 있다

24장. 백성의 마음이 먼저 자유해야 한다

25장. 자유 권리의 방한

26장. 대한의 독립 내력 ....

후록: 독립주의의 긴요한 조목 - 실천 6대 강령 -

이승만은 선교사들이 감옥으로 넣어준 영어성경과 수백 권의 책들, 그리고 국제정세 잡지들을 읽으며, 조선의 ‘백성’들을 독립된 개인, 즉 스스로의 권리와 책임을 자각하는 대한의 ‘국민’으로 계몽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당시 조선 평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썼기 때문에 그 내용이 상당히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차분히 한 문장 한 문장의 정치철학적 의미를 생각하며 읽어보면 공화주의와 민주정의 차이, 삼권분립, 헌정주의,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차이, 종교의 자유, 개인의 자유 등에 대한 놀랍도록 정확하고 깊은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다. 적어도 존 로크의 <통치론>이나 알렉시스 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같은 수준의 이해를 담고 있는 저작이다.


특히 마지막 후록에서 내리는 결론은 토크빌의 결론과 같다.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신 자유에 감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한 필수 기초라는 것, 즉 도덕이 없이는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이는 도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승만은 감옥에서 이미 깨달은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악을 짓지 못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 어찌 평강하고 안락한 복을 얻지 못할 것이며, ... 곧 천국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지금 세계에서 상등 문명국의 우수한 문명인들이 이러한 교의 가르침으로 인류사회의 근본으로 삼아서 나라와 백성이 다 같이 높은 도덕적 지위에 이르게 된 이유이다.”


이승만은 이런 이해를 기초로 미국에서 공부와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고 해방 후 1948년 미국의 공화주의 모델을 따라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이 건국은 철저히 미국의 건국정신을 모델로 삼은 것이었고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그 바탕에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자랑스러운 기독교세계관적 뿌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들도 태반이고,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아는 이가 소수라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크리스천의 정치참여는 마땅히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위 글은 기독교세계관 월간지 <월드뷰> 11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