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아메리카냐 사회주의냐" 갈림길에 선 미국

Updated: Oct 31, 2020

"우리는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 (NYT)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2월 의회 국정 연설에서 던진 말이다. 트럼프 특유의 과장어법 탓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로부터 몇 개월 전인 2018년 민주당 예비선거에 ‘사회주의’를 표방한 후보는 전체의 10%에 달했고, 그 중 두 명이 11월 중간선거에서 당선되어 하원에 진출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내 최대 사회주의 단체인 ‘민주사회주의연합(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DSA)’이라는 단체의 회원들이다.


DSA 회원인 하원의원 Tlaib 과 AOC (Daily Beast)

년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통해 인기를 얻게 된 DSA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현재 거의 7만 명의 회원을 자랑한다. 코로나19가 덮친 올해에만 약 1만 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에 더 큰 피해를 입힌 이유가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라고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DSA는 의도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를 모호하게 내리고 있다. 회원들도 ‘사회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와 사회주의 시대의 도래를 기대하는 이들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사실 20세기 초부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나 단체는 미국에 계속 있어왔고 그 유토피아 이상에 젖은 혁명가들도 간간히 있어왔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미국 진보세력과 민주당의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오카지오 코르테즈(AOC)등의 급진적인 사회주의 성향의 리버럴들이 당 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 바이든의 러닝메이트인 카말라 해리스의 경우, 상원에서의 법안 표결 이력을 보면 사실상 샌더스보다 더 진보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20세기 후반부터 치열하게 진행되어 온 사회문화 각 영역의 ‘진지’를 구축하는 네오막시즘의 문화전쟁과 ‘제도권으로의 긴 행진(long march through the institutions)’이,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가시적인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미국의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재단(Victims of Communism Foundation)’에서 발표한 미국인들의 ‘사회주의’ 인식조사는 그 전쟁의 심각한 결과를 잘 보여준다.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재단 (VOC) 에서는 매년 미국인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다.

이 재단이 YouGov 에 의뢰해 지난 9월 9일부터 28일까지 2,1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의 40%는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18%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그리고 14%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호감도는 55%였지만 2018년 61%, 2019년 58%에서 점점 떨어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24세부터 39세까지의 ‘밀레니얼’들 중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47%)이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43%)보다 더 높았다. 이들 중 22%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고 더 많은 비율(27%)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또한 ‘파시즘’이 ‘사회주의’나 ‘마르크스주의’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정치체계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미국인들의 절반 이상은 중국공산당이 나치독일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등 사회주의에 희생된 사람들은 나치즘으로 대표되는 파시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사회주의는 지난 한 세기동안 보수적으로 잡아도 세계에서 약 1억 명의 인명을 살상했다.

미국 40세 미만 5명 중 1명이 사유재산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VOC)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 젊은이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어떤 이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40세 미만의 절반 이상은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대답하거나 잘못된 정의를 내렸다. 밀레니얼들과 16세부터 23세까지의 ‘Z세대’들은 각각 30%와 26%만이 마르크스주의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국가’라고 바르게 대답했다. 전체 연령대의 미국인들도 평균적으로 32%만 사회주의가 ‘정부가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거의 100%의 국가 경제를 통제하는 체제’라고 대답했다.


또한 이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 중 무려 26%는 자본주의 체제가 없어지고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는 것을 지지한다고 대답했다. 40세 미만의 젊은 응답자들은 이런 변화를 지지하는 비율이 반대하는 비율보다 더 많았다. 이들 Z세대와 밀레니얼들은 각각 71%와 64%가 선거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뽑는 것에 대해 ‘상관없다’거나 오히려 ‘더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또한 이들 중에는 조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더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펴줄 것을 기대한다’고 응답한 비율(35~38%)이 ‘더 자본주의적인 정책을 펴줄 것을 기대한다’고 응답한 비율(24~28%)보다 더 높았다. 이들 중 약 20% 정도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공적’ 소유를 도입하는 것에 찬성하기도 했다.

이 설문에 응답한 미국인 중 33%는 도널드 트럼프가 시진핑(17%)이나 김정은(16%)보다 세계평화에 더 위협적이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거의 3분의 1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김정은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더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또한 Z세대 청년들은 코로나19가 세계적 팬데믹으로 확산되게 한 책임이 시진핑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대답했다.

미국인 4명 중 1명이 자본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를 원하고 있다 (VOC)

이 연구를 의뢰한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재단의 마리온 스미스 사무총장은 “샌더스와 AOC와 같은 정치인들이 사회주의를 정상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젊은 미국인들이 불평등에 반대하며 시위에 나서게 되면서, 점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인의 4분의 1이 자본주의를 없애고 사회주의 체제를 원한다는 건 우리가 사회주의의 해악에 대해 젊은이들을 교육하는데 크게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했다.


미국보수연합(ACU)의 올해 주제는 '아메리카 vs. 사회주의'다 (Reuters)

2020년 대선은 트럼프 지지자들과 무조건 트럼프만은 안 된다는 ‘Never Trumper’들의 대결로 비쳐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실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의 근간을 좌우하는 문화전쟁의 싸움이다. 실제로 “미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주장하는 ‘1619프로젝트’와 ‘BLM운동’을 통해 드러나듯이 미국의 건국정신이 흔들리고 있다. 극좌익 세력에 휘둘리는 민주당은 ‘실용적 헌법’을 주장하며 역사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헌정공화국의 정체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보수진영은 올해 “America vs. Socialism”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대한민국의 위기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

미국도 대한민국 못지않게 심각한 국가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Getty Images)

올해 11월 3일 선거는 코로나 팬데믹을 이유로 유권자의 우편투표로 진행되면서 개표결과가 최소 며칠, 길게는 몇 주까지 늦어질 전망이다. 한쪽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않는 한 결과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양측은 상대방의 부정선거를 주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양측 지지자들은 선거결과에 불복할 뜻을 내비치고 있고, 일각에서는 선거일부터 내년 대통령 취임식까지의 79일 동안 남북전쟁 이후 최악의 분열과 소요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총기와 총알구매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이 혼란을 틈타 중국공산당은 더욱 사회주의 선전에 박차를 가하고 아시아에서의 패권 장악을 시도할 전망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말했듯 자유는 다음 세대에게 저절로 물려지지 않는다.


그는

“자유는 소멸되기까지 결코 한 세대보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유는 끊임없이 싸워내고 지켜내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레이건은 자유의 가장 크고 위협적인 적을 사회주의로 보았다. 최소 1억 명의 인명을 앗아간 사회주의의 분명한 해악을 다음 세대에게 확실하게 가르치고 경고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시급한, 어쩌면 이미 많이 늦어버린, 엄중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 글은 2020년 11월 4일자 미래한국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