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은 미국의 243주년 독립기념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날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 계단에 서서 워싱턴 기념탑까지 내셔널몰 공원을 가득 매운 군중을 향해 ‘미국에 대한 경례’ (Salute to America) 라는 연설을 했다. 미 대통령이 미국 독립기념일에 대중연설을 한 것은 1951년 트루먼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미국의 주류언론들과 민주당은 일제히 트럼프의 이례적인 독립기념일 행보를 두고 ‘미국 국민들의 연중 최대 잔칫날에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라고 비판하기 바빴고 한국의 언론들도 “트럼프 ‘독립기념일 쇼’… 김정은 열병식 부러웠나” (조선일보 7월 5일자) 라며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을 맞아 다시 한번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 제2차 대륙회의에서 선언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그 창조주가 부여한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와 같은 양도할 수 없는 몇 가지 자연권이 있다”는 “자명한 사실”과, 이 명제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강조하는 것은 매우 마땅하고 적절하다. 왜냐하면 미국의 위대한 독립정신과 건국을 기념하는 7월 4일은 그 뜻 깊은 역사를 왜곡하고 훼손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그 정신이 큰 위협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현재 그 건국역사를 부정하는 반(反) 대한민국 세력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미국도 사실은 오랫동안 자국내 반(反) 미국 세력의 집요한 공격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한 예로, 이번 독립기념일 며칠 전에는 나이키가 시장에 출시하려고 했던 벳시로스(Betsy Ross) 성조기가 그려진 ‘에어맥스원USA’ 운동화를 좌파세력들의 반발에 굴복해 철회하기도 했다. 벳시로스 성조기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 당시 13개 주를 의미하는 13개 별을 수놓은 최초의 성조기다. 미국 국가가 나올 때 저항의 의미로 무릎을 꿇는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 나이키의 ‘저스트두잇’ 30주년 광고모델까지 꿰찼던 콜린 캐퍼닉 (Colin Kaepernick) 전 NFL선수가 벳시로스 성조기는 미국의 노예시대를 연상시킨다고 반발한 것이 철회의 이유다. (물론 이 소란을 계기로 나이키의 주가는 3일만에 2% 상승해 30억불의 이익을 얻었다.)
미국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시민들은 1776년 7월 4일 미국이 선언한 ‘자유독립’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정권과 그 추종세력 및 중국 등을 포함한 전체주의 폭정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내야 하는 필요성은 69년 전 6.25남침 당시만큼이나 분명하지만, 그 ‘자유’는 사실 ‘1776의 자유’와 ‘1789의 자유’로 구분될 수 있는 두 갈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으로 대표되는 ‘1776의 자유’는 창조질서(Created Order)와 천부인권(God-given Natural Rights)을 인정하였던 ‘보수주의적 자유’를 의미한다. 반면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1789의 자유’는 창조주와 그 질서 대신 인간이성을 최고의 절대존재로 추대해 인간이 유토피아적 지상낙원을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중심의 자유’를 의미한다.
사실 1776의 자유와 1789의 자유는 둘 다 군주의 폭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시민의 자유와 존엄을 추구했다는데 있어 그 시작은 유사하다. 미국인들은 영국의 왕정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했고 프랑스인들도 자국의 군주와 귀족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했다. 미국과 프랑스 각국의 시민들 가슴에 자유의 불씨를 타오르게 한 인물도 토마스 페인이라는 같은 인물이었다. 페인은 1776년 미국에서 ‘상식’(Common Sense)이라는 팜플렛을 통해 일부 독립운동가들에게 국한될 수 있었던 자유독립의 움직임을 전 미국시민의 대중운동으로 번지게 했고, 곧이어 프랑스로 건너가 ‘인권’(Rights of Man)이라는 출간물을 통해 프랑스시민들에게도 같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 두 ‘자유’는 군주제와 폭정에 저항한다는 표면적인 시작은 비슷했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 너무나 달랐다. 미국의 1776년 독립선언은 비록 당장 이어진 영국과의 전쟁으로 8천여명의 적지 않은 전사자를 발생시켰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운 국가 기초문서인 미국 헌법을 탄생시켰고 미국이라는 위대한 자유공화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훗날 나치독일과 사회주의 소련, 그리고 우리에게는 더욱 잊어서는 안될 김일성의 남침 등의 위협에 맞서 싸워 이김으로써 자유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기여를 했다. 반면 프랑스의 1789년 혁명은 이후 수 년 동안 이어진 공포정치(Reign of Terror)로 수만명의 사람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했고 방데(Vendée)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무려 17만에서 20만의 인명을 학살당하게 했다.
프랑스 혁명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영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상당부분 ‘자유민주혁명’으로 미화되어 잘못 인식되어져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사실 혁명정부의 선동정치로 인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군중의 광기와 살육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이성을 절대적이고 완벽한 것으로 추앙하고 프랑스 사회에서 기독교를 완전히 청산하려고 시도했던 자코뱅 좌익세력의 반(反)기독교적 혁명이었다. 왕정 및 귀족과 결탁해 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로마카톨릭 교회와 성직자들에 대한 반감이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로 표출된 것도 사실이지만 프랑스혁명의 ‘비기독교화’(de-Christianization) 정책은 단순한 반부패 운동을 한참 넘어선 기독교 말살 수순이었다.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은 달력에서 기독교 명절들을 지우고 혁명의 날과 자유, 이성 및 ‘최고존재’의 축전일을 제정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프랑스 전역의 교회를 국유화하고 인간이성을 숭배하는 신전(Temple of Reason)으로 둔갑시켰다. 급기야 카톨릭을 대체하는 ‘이성숭배’(Cult of Reason)를 공식 국교로 채택하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신론이 또다른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혁명가들은 곧이어 이성숭배를 ‘최고존재의 제전’(Cult of the Supreme Being)으로 다시 탈바꿈했다. 무신론(Atheism)이 이신론(Deism)으로 순화된 듯했지만 사실 신의 존재를 인간이성과 철학에 가둬버려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를 형상화해 숭배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공포정치의 독재자 로베스피에르는 이 제전의 대제사장으로 군림했다.
그렇게 로베스피에르는 그가 자주 인용했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발명할 필요가 있다”는 볼테르의 말을 실제로 프랑스혁명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인간보다 상위에 있는 그 어떤 신적 존재를 부정하고 그 절대적 왕좌에 인간이성을 올려놓아 새로운 사람중심의 종교를 ‘발명’한 것이다. 같은 시기 페인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와의 논쟁을 거치며 인간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론화 한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라는 마지막 책을 내놓았다. 페인은 이 책에서 신은 존재하지만 인간과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신론적 사고와 ‘신앙의 이성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철학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훗날 니체가 “신은 죽었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말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반면 프랑스혁명의 시작보다 12년 앞선 미국의 ‘1776자유’는 그 독립선언문에 적혀 있듯이 인간의 자유가, 인간의 생명이 그러한 것처럼,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라는 ‘자명한’ 이해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는 이 천부적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를 구성했다고 전제한다. 미 헌법에는 '자유라는 축복'(Blessings of Liberty)을 지키기 위한다고도 적혀 있다. 이는 신을 인간이성으로 대체해 인간의 본성을 조작하고 사회를 스스로 설계하려 했던 1789년 프랑스혁명의 거대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정부의 존재이유를 전제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국의 액튼 경(Lord Acton)은 “엄격히 따지자면 자유의 역사는 1776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 인간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 채 그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차이는 버크와 페인의 논쟁 등을 통해 보수와 진보, 또는 우파와 좌파라는 정치철학적 구분을 낳았다. 미국의 보수주의적 혁명은 과거로부터 절단을 선언한 프랑스혁명과 달리, 놀랍도록 차분하고 선대 영국인들의 축적된 경험적 지혜를 충분히 존중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러셀 커크가 이름한 것처럼 미국의 독립은 “혁명을 막은 혁명”이었던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대해 “그것은 미국만의 문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어권 시민들의 자유가 기초한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와 권리장전(Bill of Rights)에 이은 세번째 위대한 권리증서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보수주의적 질서는 영국보다 더 오래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수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 1953)을 쓴 커크는 20년 뒤인 1973년 출판한 ‘미국 질서의 기원’(The Roots of American Order)이라는 책에서 이 미국 보수주의 질서의 뿌리가 ‘5대 도시문명’을 따라 발전되어 왔음을 추적했다. 커크는1776년 필라델피아에서 수립된 최초의 보수주의 국가체제가 런던에서 개념화된 자연법 (보통법)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는 로마문명의 법치와 공화정의 기초를 바탕으로 발전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로마의 도덕질서는 아테네에서 인간이 정치적 개체로서의 인식을 하게 된 철학적 사유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 정치적 인식은 창조주가 직접 계시를 통해 사회 규범을 정해주고 인간을 삶의 목적이 있는 도덕적 존재로 인식하게 한 예루살렘의 유대전통, 즉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십계명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혁명은 신의 계시와 섭리를 인정하는 유대-기독교의 뿌리를 서구문명에서 끊어버리고 사람중심의 세계관과 그에 따른 ‘1789자유’의 전통을 낳았다. 이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과 1949년의 중국혁명으로 그 정치사적 맥을 이어왔고 그 본질에는 유물론적 무신론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인간의 자유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해 상이한 대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른 민주주의에 비해 어떻게 다르고 더 성공적일 수 있었는지를 탐구한 토크빌은, 미국인들의 청교도적 뿌리가 개개인의 양심에 공통된 도덕성을 자리잡게 했음에 주목했다. 바로 “자유는 도덕없이 세워질 수 없고 도덕은 신앙없이 세워질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른 것이다. 토크빌은 인간의 자유를 신의 은혜의 산물로 여겼고, 오직 창조주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이해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또다른 폭정으로 이를 수 있는 다수의 지배체제가 아니라 창조질서에 따른 성숙한 독립시민이 자유를 향유하게 하는 체제였던 것이다.
정말 위대하고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이해를 미국을 체험하기 전 아시아에서, 그것도 어느 최약소국의 감옥에서, 이미 통달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승만이다. 1903년 9월, 20대 초반이었던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이런 글을 썼다. "정치는 항상 교회 본의로서 딸려 나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 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잡히나니 이럼으로 교화로써 나라를 변혁하는 것이 제일 순편하고 순리된 바로다.... 반드시 백성을 감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한 후에야 정부가 스스로 맑아질지니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요." 또 그의 '독립정신'(1904)은, 인간의 한계와 인간 상위의 초월적 창조주를 인정하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만 "두려운 마음으로 죄를 짓지 못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1776의 자유를 이미 감옥에서 온전히 통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776의 자유를 바탕으로 태어난 미국 내에서도 쉬지 않고 꿈틀거리며 도사리고 있는 1789의 자유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고 견제하는 것처럼, 이승만이 미국질서를 바탕으로 구상하고 건국한 대한민국도 그 '독립정신'의 끊임없는 상기와 연습이 필요하다. 인간의 자유는 단번의 천재적 기획과 실행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재된 적들로부터 보전되고 수호되기 위해 끊임없는 재인식과 재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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