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been one helluva ride. Oh, I really hate to see it end this way. Oh my God, I hate it!(정말 끝내주는 4년의 여정이었습니다. 아,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을 보는게 너무 싫습니다. 오 하나님, 정말 싫네요!)”
트럼프의 절친인 린지 그래험 상원의원이 지난 6일 합동의회 발언에서 내뱉은 탄식이다. 대략 지난 11월 말 정도부터 많은 보수주의자들의 심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누가 뭐래도 지난 4년 트럼프는 정말 멋졌다. 초기 일부의 우려와 달리 보수주의적 가치관에 제대로 입각한 정책을 마음껏 펼쳐주었다. 공화당의 단임 대통령 중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보수주의 대통령이었고 역대 공화당을 통틀어도 주어진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만은 손에 꼽을만한 업적을 남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치적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깨시민주의(wokeism)의 영향으로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조차 못하고 일터에서 식사기도도 마음껏 못 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던 미국 크리스천들에게 다시 자긍심을 회복해주었다.
중국 등에 뺏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되찾아 돌려주었고 코로나 전까지는 역대 최저 실업률(특히 유색인)과 최고시급을 기록했다. 당장 기념품샾에 made in USA 제품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남.녀.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가정관과 (태아)생명의 존엄성을 재천명 했으며 이를 파괴하는 제도와 기관들의 돈줄을 끊어버렸다. 특히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과 같은 낙태 전문 기관들과 태아장기매매 업계로 새나가는 국민들의 혈세를 틀어막았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보수주의 학생들이 좌편향된 교사들이나 ‘사회정의전사들’의 눈치를 보지않고 마음껏 토론해 이길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공립학교의 PC주의적 방침들을 폐지하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을 통해 종교자유위원회를 활성화시켜 전 세계 핍박받는 신앙인들을 위로했고, 특히 레이건이 소련의 국민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중동과 중국 등 반기독교적 신정체제와 공산체제 하에 신음하는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어주었다.
또 천부인권위원회를 설치해 미국 국무부에서 ‘인권’의 남용을 지적하고 그 본래의 의미(생명, 자유, 소유권)를 회복시켰다. 작년에는 ‘1776위원회’를 발족해 좌익들의 역사왜곡과 자학적 수정주의 역사관에 대응했다.
중동의 이슬람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테러조직을 효과적으로 소탕했고 그 외 요주의 테러단체 지도자들을 사살해 무력화시켰다. 블럽(The Blob, 정계와 학계의 외교정책 전문가들을 가리키지만, 약간 탁상공론 이론가들을 풍자한 표현)의 관례에 구속되지 않는 트럼프만의 이례적인 외교방식은 아브라함 협정(2020년 9월 15일 체결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의 평화협정)을 통해 많은 이슬람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전례 없는 물꼬를 틀어주었다. 과거 대부분의 미 행정부가 약속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을 트럼프는 단숨에 이행했다.
남쪽 국경에 장벽을 설치해 불법이민을 차단했고 이를 통해 국경지역의 만연한 수많은 마약 및 인신매매 카르텔을 소탕했다.
외교안보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한 성과는 중국의, 정확히는 중국공산당의 실체를 직시하고 마땅히 대적한 것이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의 어떤 다른 후보도 트럼프만큼 확실하게 중국공산당을 압박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업적은 역시 3명의 보수주의 대법관을 앉힌 것이다. 이는 미국 사회와 양심의 급격한 파괴를 최소 10여년 제지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레이건 일레븐’(레이건 보수주의의 11가지 원칙)을 채점기준으로 삼는다면 트럼프는 자유, 신앙, 가정, 생명, 미국 예외주의, 건국 정신, 낮은 세금, 제한된 정부, 반공주의, 강력한 국방, 개인존중 중에서 9점~10점은 받는다. 성품 면에서 마이클 펜스 전 부통령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데, 펜스도 그 사상과 가치관만큼은 트럼프에 뒤지지 않지만 추진력과 승부사 기질은 트럼프를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다.
대한민국 보수의 입장에서는 김정은과 무려 세 번이나 만나준 트럼프가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김정은의 ‘위상’ 외에 실제로 트럼프가 북한정권에 양보한 실익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행정부 초기 설정했던 ‘최대 압박’과 제재가 여전히 북한정권을 옥죄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국회에서 한 연설과 싱가폴에서 김정은에게 보여준 ‘티저’ 영상은 북한이 갈 수 있는 자유와 번영의 메시지가 뚜렷했고 북한주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리버럴 미디어와 민주당에게 너무 많은 공격의 빌미를 준 그의 트윗들도 아쉽다. 즉흥적이고 가벼워보이는 트럼프의 트윗들은 그의 비중 있는 놀라운 업적들을 너무 많이 가려버렸다. 민주당과 리버럴 미디어는 이를 놓치지 않고 4년 내내 트럼프에 대한 맹비난을 즐겼고 반사이익을 챙겼다. 그걸로 민주당은 “트럼프만은 안돼”라는 캠페인 플랫폼을 구축했고 바이든 따위라도 득표할 수 있는 기형적인 여론을 조성했다. 결국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그의 성품(character)이 발목을 잡은 듯 하다.
지난 두 달 동안 대선 이후 보여준 모습도 많이 아쉽다.
초반에는 보편적 우편투표 때문에 예상 가능했던 선거부정의 여러 정황들과 의혹들을 해소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최소한 민주당이 트럼프 당선 전부터 임기 4년 내내 줄곧 트럼프의 당선을 부정하고 러시아게이트를 조작해 낸 것을 생각하면, 트럼프의 선거결과 불복은 적어도 지지자들에게 그럴만한 명분이 있었다. 오히려 바이든 행정부에게 시작부터 큰 부담을 안겨주기에 효과적인 정치적 투쟁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파월의 “크라켄”이 음모론적 요소로 가득한 의혹제기 정도로 판명나고, 소송이 줄줄이 기각되던 11월 말이나, 아니면 각 주가 발표한 선거인단에 대한 모든 의의제기가 완료되어야 하는 12월 세이프하버 직후, 아니면 늦어도 텍사스의 대법원 소송이 기각되었을 때에는, 부정선거 주장을 일단 내려놓았어야 했다.
무엇보다 시드니 파월 변호사가 공화당 당선의원들도 도미니언을 매수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 시작하고, 린 우드 변호사가 조지아 주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상원결선에 투표하지 말라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부정선거 주장을 잠깐만이라도 미뤄놓고 조지아 주 상원 2석, 즉 상원 다수석을 사수하는데 무조건 올인했어야 했다. 부정선거 의혹은 자연히 투표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지자들의 여론에서 음모론적 요소를 걸러내고 선을 그었더라면, 1월 6일 의회폭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임기 초기부터 MAGA(Make Again Great Americ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세력 내에 Q아논 음모론이 퍼지는 것을 경계하고 차단했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극단적 음모론을 묵인하며 일정 부분 즐기기도 했다. 막판에는 세력결집을 위해 12월 23일 Q아논 회원들을 백악관에 초청하기도 하면서 이 음모론에 의존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조지아를 지켜냈다면, MAGA 세력은 공화당으로 그대로 수혈되어 MAGA 코커스(caucus, 정당 지지자모임)를 만들고 앞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2024년에 트럼프 본인이든 누구든 MAGA 코커스가 미는 후보를 대선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님 몇 번 언론에 흘렸듯이 최소 루퍼드 머독(폭스뉴스와 뉴욕포스트를 비롯 미국, 호주의 뉴스매체 그룹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편집자주)에 대항하는 ‘트럼프 미디어매체’라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린지 그래험의 말처럼, 그렇게 멋졌던 트럼프의 4년이 이렇게 비참하게 끝나는게 너무 싫다.
하지만 한편으론 보수주의라는게 원래 그렇게 승승장구하기보다는 이렇게 겨우겨우 최소한의 생명력만 유지하며 근근히 살아남는게 아닌가 싶다.
사실 대선을 두 달도 채 안 남기고 긴즈버그 대법관이 죽었을 때, 혹시 재임에는 실패하려는게 아닌가 싶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만 만들어놓고 물러나게 하시려고 에이미 배럿의 임명까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게 아닐까 생각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진정한 소망은 이 땅에 없어질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Permanent Things)에 있음을 알게하시려고?.
보수주의자에게 크라켄 따위의 “한 방”은 없다. 보수주의는 한 명 한 명을 대상으로 하는 미련하다싶을 정도로 고되고 지루할 정도의 진실된 설득이다. 그마저도 아무도 고마워하거나 알아주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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