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악당 앞에 ‘알아서 기는’ 할리우드

오는 17일, 디즈니의 ‘뮬란’이 국내 개봉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개봉이 수차례 미뤄진 ‘뮬란’은, 결국 미국에서는 유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만 공개되었고 중화권 및 아시아권에서만 극장개봉 중이다. 1998년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원작을 실사로 리메이크한 ‘뮬란’은, 전쟁 발발로 징집을 당하는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전장에 나서는 여전사 ‘화뮬란’의 이야기다. 북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의 장편 서사시 ‘목란사(木蘭辭)’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뮬란'은 개봉 전부터 논란이 예고되었다. (Walt Disney Pictures)
조슈아 웡

현재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권에서는 디즈니의 ‘뮬란’을 보이콧하는 추세다. 우선 작년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한창일 때 ‘뮬란’의 주연배우 류이페이(Liu Yifei, 유역비)가 시위를 과격 진압한 홍콩경찰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면서 이미 보이콧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지난 주 공개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중국 신장(Xianjiang) 당국에 감사하는 언급이 노출되면서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이다. 홍콩시위의 주역인 조슈아 웡(Joshua Wong)은 ‘#BoycottMulan’ 해시태그와 함께 “뮬란을 관람하는 것은 경찰의 가혹행위에 눈을 감는 것일 뿐 아니라 무슬림 위구르족 집단 감금에 공모하는 것”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엔딩 크레딧에 노출된 디즈니의 위선

‘뮬란’의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는 ‘China Special Thanks’ 목록에 중국 측 특별감사 대상들이 나열되는데, 여기 ‘신장 위구르 자치구 중국공산당 선전부’와 ‘투르판(Turpan) 시 공안부’가 포함되어 있다. ‘뮬란’이 뉴질랜드와 중국 등의 20여개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것은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문제는 이 두 기관이 현재 최소 백만 명의 위구르 소수민족 무슬림들이 강제 구금되어 있는 수십 개의 집단수용소들을 직접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부서라는 것이다. 특히 투르판 공안부는 강제수용소 운영으로 작년 10월 미국 정부의 제재명단에 들어간 기관이기도 하다.

'뮬란'의 엔딩 크레딧 끝부분

신장 지역에서는 셀 수 없는 위구르 소수민족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과 생체실험 및 세뇌(‘재교육’)를 당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이곳 무슬림 여성들을 상대로 강제 불임 시술 캠페인을 벌여왔는데 작년 이 지역 출산율이 무려 24%나 감소한바 있다. 일부 구역에서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출산율이 84%가 감소했다는 연구도 있다. 이는 분명 유엔이 국제법상 규정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대량학살(Genocide)’ 에 해당한다. 지난 수년간 수집된 중국의 소수민족 말살 증거들과 증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10일, “통계를 넘어: 위구르 여성과 중국의 잔혹함”이라는 주제로 열린 온라인 세미나에서 위구르족 강제수용소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생생한 증언이 있었다.

신장 '재교육'캠프에 강제 수용된 위구르인들

‘뮬란’ 제작진이 신장 위구르 지역의 탄압에 대해 몰랐을 리는 만무하다. 특히 니키 카로(Niki Caro) 감독이 이 지역을 방문했던 2017년에는 중국 당국의 대규모 튀르크 소수민족 구금캠페인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이미 많은 증언들이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때였다. 2018년 제작진이 본격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소수민족 재교육 프로그램이 최고조에 달했으며 이들이 직접 수용소들을 목격했을 가능성도 높다. 구글맵을 통해 신장 수용소들을 폭로한 숀 장(Shawn Zhang) 인권운동가는 “투르판 공항에서 G312고속도로를 타고 촬영지인 샨샨 사막공원으로 이동했다면 최소 일곱 개의 재교육수용소를 목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경악할 것은, 이윤추구를 이유로 중국의 인권유린에는 그렇게 두 눈을 가린 디즈니가 미국에서는 낙태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시장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작년 조지아 주(州)가 심장 박동이 시작된 태아의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디즈니는 ‘여성의 선택할 권리’를 옹호하며 해당 주의 모든 로케이션 촬영을 멈추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의 선전기관 역할 자처

2개월 전 윌리엄 바(William Barr) 미국 법무부장관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 기념관에서 한 연설에서,

“중국 정부의 검열관들은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할리우드가 스스로 검열을 알아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한바 있다. 몇 주 전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문학단체 펜(PEN)아메리카가 발표한 94쪽의 보고서도 “중국 관료들의 반감을 피하기 위해 영화의 출연진, 플롯, 대본, 세트장을 바꾸는” 할리우드의 비겁한 행태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

할리우드에서 만들고 베이징이 검열하다(Made in Hollywood, Censored by Beijing)’라는 타이틀의 이 보고서는, 먼저 1990년대부터 중국의 급증한 중산층이 서구문화를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커진 중국 영화시장의 영향력에 주목한다. 실제로 중국의 스크린 수는 약 20년 만인 2017년에 이미 북미 스크린 수(약 4만4900개)를 한참 앞질렀다. 반면 중국의 공산주의 일당독재 정치체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수입되는 모든 영화는 중국 선전부의 검열을 거쳐야만 했다. 중국 공산당의 결재에 따라 할리우드 영화의 성공여부가 판가름 나게 된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와 같은 개성과 고집이 센 감독은 중국의 검열에 오히려 도발을 하기도 한다. 지난 해 개봉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는 이소룡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 그리고 중국의 편집요구를 거절하고 중국 개봉이 무산됐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프로듀서들은 중국의 요구에 정확하고 친절히 응대한다. 미션임파서블3 제작진은 누더기 옷들이 걸쳐진 상하이 시가지 장면을 중국 검열의 요구에 따라 삭제했다. 1984년 원작인 ‘레드던’의 2012년 리메이크에서는 구소련 대신 중국을 악역으로 그렸다가 중국의 반발로 인해 편집과정에서 이를 모두 북한으로 바꾸기도 했다. ‘아이론맨3’‘월드워Z’ 등의 경우도 중국의 요구나 검열에 따라 콘텐츠를 바꾸거나 거부해 불이익을 당한 경우다.

펜아메리카의 보고서 표지

보고서는 이제 할리우드가 중국의 요구가 없어도 알아서 중국 입맛에 맞출 정도로 길들여졌다고 꼬집는다. ‘알아서 기는’ 것이다. 매번 중국의 요구에 따라 영화를 고치기보다 한 번에 검열에 통과하도록 애초부터 제작하는 것이 막대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초 개봉될 탐 크루즈(Tom Cruise) 주연의 ‘탑건’ 리메이크에서는 아예 예고편부터 주인공의 복장에서 일본국기와 대만국기가 제거됐다. 앞서 2016년 개봉한 마블의 ‘닥터스트레인지’에서도 중국 당국을 의식해 원작에서 있었던 티벳의 흔적들을 모두 지운바 있다. 펜아메리카의 제임스 테이저(James Tager) 자유표현 연구정책 부국장은

“이제 점점 세계의 관중들이 보는 장면들을 중국공산당이 구성하고 있다”

고 말한다.

처음부터 중국의 검열을 의식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할리우드가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을 조명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소신껏 내던 때가 있었다. 1997년에는 브래드 피트(Brad Pitt) 주연의 ‘티벳에서의 7년’이 개봉하고 또 몇 달 만에 달라이 라마의 삶을 조명한 마틴 스코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의 ‘쿤둔’이 개봉되기도 했다. 그해에는 중국의 사법체계를 비판한 리처드 기어(Richard Gere) 주연의 ‘레드코너’도 개봉되었다.

하지만 중국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할리우드 작품은 그 해가 마지막이었다. ‘쿤둔’의 경우 중국 당국의 강력한 항의로 제작사인 디즈니의 당시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 최고경영자가 공개사과를 해야 했고, 심지어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국무장관을 자문으로 고용해 중국을 달래기까지 해야 했다. 현재 디즈니 플랫폼에서 ‘쿤둔’은 절대 찾을 수 없다. ‘티벳에서의 7년’을 감독한 장-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는 계속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결코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달라이 라마를 만난 적도, 앞으로 만날 계획도 없다”고 선언해야만 했다. 브래드 피트는 수년 동안 중국입국 금지령이 내려졌고, 티벳 자유화 운동으로 이제 할리우드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리처드 기어는 지난 7월 미 의회에 출석해 중국의 이런 할리우드 잠식 실태를 증언했다.


결국 자유진영의 소비자가 바로잡아야

‘뮬란’의 ‘중국 당국 감사’ 엔딩 크레딧 바로 다음으로 올라온 자막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동물보호협회가 동물액션 촬영을 감독하였습니다”는 문구였다. 1939년 ‘제시 제임스’ 촬영 도중 말 한 마리가 추락사한 것을 계기로, 미국 동물보호협회(AHA)는 할리우드로부터 모든 영화 제작 과정에서 동물보호에 힘쓸 것을 약속받는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 크레딧 맨 마지막에 동물보호협회의 트레이드마크인 “어떤 동물도 다치지 않았다(No Animals Were Harmed”)는 문구나 “동물보호협회가 동물촬영을 감독했다”는 일종의 ‘보증’ 문구를 넣게 된다.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

마이크 갤러거(Mike Gallagher) 공화당 하원의원은 중국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소비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진실 투여다. 예를 들어 중국 검열을 의식해 제작한 모든 영화의 시작이나 끝에 “이 영화는 중국 프로파간다에 알맞게 제작되었습니다”라던가, 좀 순화한다면 “이 영화는 중국 수출을 고려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정도의 문구를 넣는 것이다. 갤러거 의원을 인터뷰한 조나 골드버그(Jonah Goldberg)의 표현에 따르면, 중국의 비민주적 영향력에 대응할 수 있는 작은 민주적 저항이다.

레닌은 자본에 눈이 먼 미국은 “자신의 목을 매달 밧줄마저 팔 것”이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자본주의나 자유시장이 아니라, 그 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불공정한 플레이어, 즉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다. 정치적 자유가 없는 중국의 개혁개방은 진정한 자유시장이 아닌 한참 왜곡되고 모순된 시장일 수밖에 없다. 시장의 원리인 소유와 정치적 자유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주의권에는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가 있을 뿐 ‘경제(economy)’는 없다.

시장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시장의 주인인 소비자다. 소비자가 진실을 마주했을 때 바른 양심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개인들이, 그렇지 못한 플레이어들을 압도해야 한다. 그래서 디즈니와 같이 원칙을 버리고 이윤만 쫓는 위선적인 공급자를 시장에서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홍콩과 대만의 자유인들과 함께 디즈니의 뮬란을 보이콧해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은 2020년 9월 16일 미래한국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