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코네티컷 주의 별칭이 '헌법 주'인 이유

Updated: Sep 17, 2020


Constitution State 라는 별칭이 적힌 코네티컷 주 차량번호판

미국의 50개 모든 주는 미국인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애칭을 각각 가지고 있다. 이 애칭은 각 주의 차량번호판에 어김없이 적혀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뉴욕 주는 1785년에 조지 워싱턴이 “제국의 왕좌(Seat of an Empire)”라고 불렀던 것이 유래가 돼서 ‘Empire State’라는 별칭을 가지게 되었고, 델라웨어 주는 1787년 가장 먼저 미국 헌법을 비준했다는 이유로 ‘First State’라고 불린다. 코네티컷 주의 별칭은 ‘Constitution State(헌법 주)’이다. 왜일까?



“17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의 설교가”라고 불린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 목사는, 영국에서 망명해 미국 매사추세츠에 정착한 초기 청교도 지도자들 중에서도 매우 개혁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당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런 ‘위험한’ 생각 때문에 동료 청교도 지도자들로부터 마저 배척받게 된다. 후커 목사는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기 위해 1636년, 약 100여 명 정도 되는 자신의 교인들을 데리고 하트퍼드(Hartford)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코네티컷 식민주를 개척한다.

100명의 교인들을 데리고 이주해 코네티컷 주를 개척한 토마스 후커 목사

2년 후인 1638년, 그는 코네티컷의 회중에게 훗날 “식민시대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설교”라고 불리게 될 말씀을 전한다. 본문은 신명기 1장이었다. 신명기는 모세가 40년 광야생활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광야의 교훈을 강조하는 고별설교다. 1장에서 모세가 어떻게 “하늘의 별같이 많은(신1:10)” 이스라엘 민족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는지 다음과 같은 통치제도를 언급한다.

“그때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 …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너희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신 1:9~15).”

후커 목사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코네티컷의 새로운 개척지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을 택하여 세워 그들로 수령을 삼아야 함’을 설파한 것이다. 그의 설교는 결 국 수개월 후, 자유로운 시민이 대표자를 선택해 제한된 권력으로 공동체를 다스리게 하는 기본법으로 열매 맺는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성문헌법, 혹은 그 원형(prototype)이라고 불리는 ‘코네티컷 근본 질서(Fundamental Orders of Connecticut)’이다. 후커 목사가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최초의 성문헌법인 '코네티컷 근본 질서' 사본 일부

추후 미국의 다른 주들도 이 문헌을 참고해 각각의 헌법을 만들었고, 150년 후 미국의 헌법도 이 문서를 기초로 구상한 것이다. 코네티컷이 ‘Constitution State’로 불리는 이유다. 자유 민주, 헌정공화체제의 원조는 역시 모세의 신명기 첫 장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태는 다름 아닌 토마스 후커 목사가 이끄는 회중, 즉 ‘교회’였다.


한국 민주주의도 그 시작이 교회


사실 따져보면 한국 땅에서 있었던 첫 번째 민주적 선거도 1948년의 5.10선거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전인 1887년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로 세워진 새문안교회에서 장로 2명을 선출해 세운 기록이 있다. 이후 한국교회는 조선시대의 엄격한 신분제도를 탈피한 민주적 선거를 꾸준히 실시해 왔다.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새문안교회에 이어 1894년 서울에서 두 번째 장로교회로 사무엘 무어(Samuel Moore) 선교사가 설립한 곤당골교회(서울 승동교회 전신)에서는 1911년 어느 백정이 양반 후보들을 누르고 장로로 선출되기도 했다. 바로 훗날 인권운동가가 된 박성춘이다. 그의 아들은 한국 최초의 외과의사(박서양)가 되었다.


머슴이었던 이자익 목사와 그의 주인이었던 조덕삼 장로

또 1905년 루이스 테이트(Lewis Boyd Tate)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전북 금산교회에서는 한 집에서 자기 주인을 제치고 먼저 장로로 선출된 머슴도 있었다. 바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3대 총회장을 역임한 이자익 목사다. 그가 머슴으로 섬겼던 주인도 금산교회 2대 장로로 선출된 조덕삼 장로다. 조덕삼 장로는 자신의 머슴이었던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자 아예 그를 평양신학교에 보내 목사로 키워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자유 민주주의의 태동에는 그 중심에 교회가 있었던 것이다.


“재덕이 겸전한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사람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뽑았을까? 신명기 1장에서 말하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성경에서는 백성을 다스리기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가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까? 이 신명기 본문의 연대 기록인 출애굽기 18장에 그 답이 나온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후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직후부터 원망이 끊이지 않았고(출 15:24, 16:2), 종종 전쟁도 치르며(출 17:8), 하나님의 법과 규례를 정립해(출 20~23장) ‘선민(選民)’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을 애굽에서 구해낸 본래 목적, 즉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키며 제사를 드리기 위해(출 5:1,3)” 성막도 지어야(출 25~40장)했다. 그 와중에 백성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서서(출 18:13)” 광야생활의 하나부터 열까지 판단을 구했던 것이다.


이때 모세의 장인이자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나타나 조언한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출 18:17~22).”

모세는 즉시 장인 이드로의 말에 순종한다(24절). 즉, 장인 이드로의 조언으로 모세와 백성들이 뽑 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기본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둘째 “진실하며,” 셋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였던 것이다.


먼저 기본적으로 전문성과 재능을 갖춘 자이다. 지도자로 뽑히기 위해서는 당연히 필요한 지식과 지혜가 있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 했다. 물론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현장을 보면 이 기본조건마저도 충족하지 못하는, 단지 명예를 좇아 기회만 엿보거나 오히려 거짓과 속임수로 껍데기만 포장해 지도자 자리를 꿰찬 인물들이 너무 많다. 이들을 분별하는 지혜도 물론 필요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정치권에 나서주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더 나아가 지도자가 능력이 있는 것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그 이후에 나오는 세 가지 덕목이 필수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실 능력이 출중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자연히 아무도 보지 않아도 진실하고 불의를 미워하게 된다. 따라서 성경은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기본이되, 능력을 가진 자들 중에서 반드시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택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전 한글 번역(개역)은 개역개정 번역의 “능력 있는 자”를 “재덕이 겸전한 자”라는, 어렵지만 특별한 한자말로 번역한바 있다. 그 뜻을 풀어보면 재능(才能)과 덕목(德目)을 모두 완전히 갖춘(兼全) 자를 택하라는 것이다. 원어의 직역은 “능력 있는 사람”이 사실 더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말로 “능력 있다” 함은 뒤에 나오는 세 가지 덕목의 뜻을 충분히 아우르지 못하기 때문에 이전 번역자들이 생소하지만 심오하고 뜻깊은 이런 표현을 구사한 듯하다.


또한 다윗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서 말씀하신 지도자의 조건도 공의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삼하 23:3, 4).”

세 번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한다.”라는 덕목은 불의한 이익을 단순히 ‘취하거나 탐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강한 태도다. 자신이 불의한 이익(뇌물 등)을 취하거나 탐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아니라 타인이 불의한 이익을 취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는 뜻이다. 즉 공공심이 있어야(public-spirited)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지도자는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정당한 이익만 취하도록 하여 공동체의 유익을 적극 강구하는 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 기준으로 한국의 정치인들과 지도자들을 돌아보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은 드물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유권자도 부족하다. 한국사회에는 자유 민주주의와 헌정 공화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대 기독교 가치관이 전무하다. 결국 다름 아닌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토크빌(Charles Alexis Clérel de Tocqueville)도 미국 전역을 순회하다가 교회의 뜨거운 예배현장을 목격한 후에야, 비로소 “자유는 도덕성 없이 세워질 수 없고, 도덕성은 신앙 없이 세워질 수 없다.”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원천을 깨달았다.


이승만은 일찍이 한성감옥에서부터, 교회가 개인의 교화를 통해 국민의 독립정신과 공화사상을 배양하는 곳임을 간파한 바 있다. 교회가 바로 자유민주사상의 온상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정치는 항상 교회 본의로서 딸려 나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 잡히나니, 이럼으로 교화로서 나라를 변혁하는 것이 제일 순편하고 순리된 바로다 …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요.”

참고자료 Daniel Dreisbach (2017), Reading the Bible with the Founding Fathers, Oxford University Press. Rod Gragg (2010), Forged in Faith: How Faith Shaped the Birth of the Nation, 1607-1776, Simon and Schuster. Russell Kirk (1974), The Roots of American Order, Intercollegiate Studies Institute.


(이 글은 기독교세계관 월간지 <월드뷰>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