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의 위기
바야흐로 좌파강점기다. 자칭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는 지난 1년여 동안 한국경제를 파국으로 이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체제근간과 자유민주가치관까지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가장 기초적인 경제상식에도 반하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무지한 정책 때문에 젊은 층의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청년대학생들의 피부에 가장 와 닫는 영향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는데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인위적으로 올려놓으니 알바생 용돈이 오르기는커녕 아예 일자리를 잃었다. 아예 문을 닫지 않았다면 야간 영업을 축소한 카페와 술집 등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영업자들과 하청업자들은 줄줄이 폐업신고를 하고 있다. 귀가를 반기던 아파트 경비원도 스스로 해고되어 사라졌거나 동료가 해고당해 업무량이 많아졌다고 표정들이 어둡다. 이는 우리가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사회주의정책의 영향이다. 동시에 소비자물가는 계속 오른다. 지출에 조금이라도 민감한 청년이라면 당장 편의점에서 파는 음료수와 도시락부터 수백 원씩 올라있는 것을 알 것이다. 외식비, 미용비, 찜질방비 등등의 생활물가 전반이 급등하고 있다.
아무도 경고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칼럼과 세미나, 청문회 등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확히 경고했던 바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아랑곳 않고 사회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폐해는 생활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재벌에 대한 혐오정서를 등에 업은 반(反)기업 정책과 대통령이 거짓을 부풀린 영화 한 편에 감동받아 펴낸 탈원전 정책은, 기업경쟁력 감소와 국가에너지원 파괴 수순을 밟고 있다. 어디 국제사회에 소문날까 무서운 가장 부끄럽고 어처구니없는 국가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젊은 세대가 졸업 후 곧 느끼게 될 한국경제의 바닥이다.
그런데 경제보다 더 큰 문제는 사실 대한민국의 근본적 자유민주국가정체성 위기에 있다. 문재인정부는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과 교육과정에서 “자유”를 삭제하여 인민민주주의 폭정과 다를 바 없는 민중민주공화국으로 국가정체성을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소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가치관을 교육현장에서부터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파괴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유럽의 여느 민주주의 국가라면 사실 이러한 사회주의적 편향이 자정(自淨) 가능한 일시적 사회실험(social experiment)이자 시행착오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국가정체성을 “수정”(revise)하려는 분명한 적을 코앞에 대면하고 있다. 그 적은 현재 지구상 가장 위협적인 군사태세로 대한민국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에 처하게 하는 핵무장을 완성해 한국의 유일한 동맹 미국에 딜(deal)을 제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은 그 체제의 적이 같은 민족이라서 덜 위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1945년 해방 전부터 김일성은 “한반도 북반부의 공산인민민주화 이후에 남반부의 공산통일”을 완성하는 “민주기지론”을 그려왔고 3대 수령인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그 현상타파적(revisionist) 정체성과 “주체혁명통일완수”라는 최종 전략목표를 바꾼 적이 없다. 북한정권은 “민족”과 “자주”라는 낭만적 허울로 남북의 통일 담론을 장악하였지만 실제로는 민족을 여전히 학살하며 자생능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인류 최악의 반민족, 반자주, 반인도주의 범죄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민족, 자주, 평화”라는 마약으로 국민을 취하게 하여 여전히 대한민국을 정복하려고 하는 북한정권 앞에 국가체제를 무장해제 하고 있다.
학창시절 “위수김동, 친지김동”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암구호를 속삭이며 북한정권에 충성을 맹세한 NL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장악한 문재인의 청와대는, “주사파정부”라는 의혹에 대해 해명은커녕 오히려 일관된 종북적 태도로 김정은과 함께 주체혁명통일을 꿈꾸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의 “한반도비핵화” 논리와 “평화협정” 전략을 그대로 차용하여 자유민주대한민국의 탄생을 지원하고 현재까지 유일한 동맹국으로 남아있는 미국을 한반도에서 내쫓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의 안보와 사회, 그리고 가정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사회주의정부의 국가정체성 파괴 수순은 아무런 견제 없이 질주하는 중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마냥 고이 삶겨져 사회주의와 북한의 사교(邪敎) 전체주의의 먹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가치관과 보수주의
그렇다면 우리가 회복하고 지켜야 할 국가정체성은 무엇인가. 촛불혁명의 휘몰아치는 거세(巨勢) 앞에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확고한 가치 중심의 보수주의 신념에 기반 한 개인들이 아닌 산업화와 기회주의로 세력화된 기득권 웰빙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보수’라는 용어가 주는 수구적 뉘앙스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혹은 애초부터 대한민국에는 보수주의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보수 vs. 진보라는 프레임 대신 우파 vs. 좌파라는 구도를 차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아예 진영구도에서 벗어나서 가치 중심(value-based)의 “자유주의 vs. 전체주의” 혹은 주체중심(subject-based)의 “개인주의 vs. 집단주의” 대조를 강조하자는 주장도 생겨났다.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하지만 좌우 대립구도는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국가정체성의 위기는 좌우(left or right)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 사회주의 광풍이 한창일 때 로널드 레이건이 말했듯이 그것은 “전체주의로 죽느냐, 자유주의로 사느냐” 로 정리되는 “상하”(up or down)의 문제이다. 또한 좌파 vs. 우파라는 구도에 엮이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중도적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궤변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보수”의 사전적 의미인 “재래의 풍습과 전통 따위를 보전하여 지킨다”라는 일반적 정의로 보수주의를 오해하는데 있다. 그러나 일반적 의미의 “보수”가 아닌 정치철학적 보수주의 (Conservatism)는 분명 단지 어감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버려질 정도의 가치가 아니다. 보수주의에도 넓은 스펙트럼과 갈래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보수주의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 상위의 초월적 섭리를 믿는 신념적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때문에 무엇보다 보수주의자는 신과 역사와 자연 앞에 겸허하며 인간이 사회를 개조(social engineering)하여 유토피아천국을 이룰 수 있다는 유물론적 인본주의 사고와 전면 반대된다. 이러한 신념적 태도는 사실 인간보다 높은 창조주와 그 역사의 주권, 즉 신의 섭리(providence)를 믿는 유대기독교 (Judeo-Christian) 신앙의 토대가 없이는 개념성립 자체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이 보수주의적 인간관과 역사관을 기반으로 설립된 국가체제인 미국의 독립선언문 전문(preamble)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즉,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되었고,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몇 가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들을 지키기 위해 인류 중에 정부가 설립되었으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인들에게 있어 인간이란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존재이고, 권리란 인간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독립선언문 국문번역본은 “창조되었고”가 “태어났고”로 잘못 번역되어 있다.) 즉, “개개인의 천부(天賦)인권”이라는 자연법적 관점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한국 보수주의와 이승만
사실 애초부터 이러한 기독교 정신의 공감대와 바탕에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건국된 미국과 달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보수주의의 가치관이 뿌리내릴 토양이나 기초가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에 보수주의는 원래 없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70년 전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를 수립할 당시 이승만 초대의장이 국가의 원형(prototype)으로 삼았던 국가체제 모델은 바로 그 보수주의 정신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국가정체성에 담아낸 미국이라는 것이다.
배제학당에서 시작된 이승만의 서구 기독교문명으로의 개화(開化)는 한성감옥에서 1904년에 쓴 <독립정신> 말미에 정확히 드러난다. 청년 이승만은 여기서 인간 개인의 “본래 자유”와 책임의식을 이야기하며 개개인이 인간 상위의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그의 행동양식을 통제할 양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 본질, 즉 인간조건에 대한 보수주의적 태도를 확실히 한다. 인간의 한계와 인간 상위의 초월적 창조주를 인정하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만
“두려운 마음으로 죄를 짓지 못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는 진리를 통찰한 것이다.
이승만의 이러한 보수주의적 세계관과 자유민주국가관은 1941년 미국에서 출판한 <Japan Inside Out> (일본 내막기)에서 또다시 드러난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공격을 수개월 전 예언한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사실 이 책은 민주주의(democracy)와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대조를 최초로 정립한 문헌으로서의 기념비적 가치가 있다. 당시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윈스턴 처칠의 연설과 조지오웰의 에세이에서만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이승만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대립을 학술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한 E.H.카, 포퍼, 레이몽아롱, 한나아렌트 등보다 수년을 앞서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이승만은 개인의 천부인권적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사실과 전체주의는 이를 전면 부정하는 인간의 무신론적 교만임을 명확하게 정리한다. 이렇게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이 이해하고 구상한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은 분명 인민민주주의와 반대되는 보수주의적 기반의 자유민주공화국이었다.
결정적으로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첫 세션에서 그의 보수주의적 자유민주가치관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승만 초대국회의장은 제헌국회를 열며 이렇게 고백하였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198명의 국회의원 중 약 50명만 개신교인이었고, 나머지는 불교신도나 유교신도였으며 전체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이 “어떤 종교나 사상과 관계없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개인의 천부인권이라는 자연법적 가치관이 사실상 창조주를 믿는 유대기독교 전통 밖에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승만이 <독립정신> 말미에 적었듯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 창조주로부터 부여된 인간의 권리를 설명하고 그 자유를 이해할 수 없다. 이 불변하는 진리를 인정하는 것에서 대한민국 보수주의와 자유민주국가정체성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정체성과 북한해방통일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승만 이후 그 독립정신, 즉 보수주의적 자유민주가치관을 상실했다. 이 근본의 상실은 여러 가지 이유와 맥락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 시작이 북한을 저버린 원죄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2주 뒤인 8월 10일 성명서에서 북한주민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공산 학정 속에 당분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우리의 불쌍한 동포들에게 나는 이렇게 외치는 바입니다. 절망하지 마시오. 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이북 5도와 북한의 우리 동포들을 다시 찾고 구출하려는 한국 국민의 근본 목표는 과거와 같이 장차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이승만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근본 목표를 북한의 동포들을 구출하는데 두었다. 이는 미국처럼 보수주의 정신과 자유민주적 가치관의 바탕이 탄탄하지 않은 한국의 정치철학적 토양에서, 이승만은 북한에 대한 “동포구출”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국가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그것을 유지시킨다면 국가정체성의 확립이 당장 미진하더라도 일단 전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방향성을 설정하고 꾸준한 교육과 “개화”를 통해 가치관의 확립을 이루어 나가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 목표를 망각했다. “선경제, 후통일”이라는 명분으로 통일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미뤘지만, 감당하지 못할 경제성장과 번영을 누리게 되면서 동포구출, 북한해방통일이라는 근본 목표는 잃어버렸다. 오히려 북한동포의 구출과 해방을 위한 통일이 아닌, 7.4남북공동선언에서 김일성이 제안하고 이후락이 덥석 물어버린 “한민족,” “자주통일”이라는 프레임에 걸려들어 헤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이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어떤 동맹보다 민족이 우선”한다는 망언을 낳았고 결국 6.15와 10.4남북공동선언, 그리고 올해 4.27판문점선언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매듭을 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아니 추구해야 할 통일은 결코 그런 통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의 사교전체주의 체제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와 공존할 수 없는,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이다. 우리의 소원은 북한정권과 손을 잡는 통일이 아니라 북한동포들의 손을 잡아 구출해내는 통일이어야 하는 것이다. 즉, 남북관계는 자주, 민족, 평화라는 낭만적 허울로 포장할 것이 아닌 북한 자유해방의 수단이어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국가의 체제정체성과 자유민주가치관이 담긴 헌법까지 비틀고 건국과 자유의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북한 사교전체주의 정권과의 체제적 근본의 차이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는 이제 인류 보편적 가치로 발전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규범에도 반하는 행태이다.
혹자는 북한을 이야기하지 않고 보수주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북한을 이야기 하는 것은 “냉전시대의 반공 정서”로서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북한은 대한민국을 소멸하는 것을 정부수립 이전부터 국가정체성으로 유지하고 있는 분명한 대한민국의 적국이다. 이러한 북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가치관을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국가정체성에 반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실념(失念)은 인지부조화와 정체성혼란을 야기한다. 오히려 젊은이들의 가치관 혼란을 줄이기 위해 북한이라는 대한민국 완성의 남은 과제를 더욱 강조하고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남북한의 극명한 대조는 전 세계인에게 부인할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함을 명명백백히 드러내 뚜렷히 밝혀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에게도 “민족, 자주, 평화”라는 허울로 북한의 본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이 분명한 진실를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 이 명백한 진실을 깨우칠 때 오히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가치관과 국가정체성을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침투로 미국의 국가정체성에 혼란이 왔을 때도 결국 체제의 적국 소련에 대한 분명한 규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 보수주의의 회복을 주문했던 배리 골드워터도 그의 책에서 약 3분의 1분량을 적국 소련에 대한 입장으로 할애했다. “적”을 분명히 규정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미국 보수주의의 회복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세력의 규합으로 가능했던 것처럼, 대한민국도 그 국가정체성 위기의 원인인 북한을 분명히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부터 대한민국 vs. 반대한민국 프레임을 설정하고 진정 대한민국을 위하는 정치세력이 결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재건과 국가정체성의 회복
미국 보수주의의 대부라고 알려진 윌리엄 버클리 주니어는 1950년 예일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예일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기독교대학이었던 예일대가 그 창립정신을 잃었을 뿐 아니라 무신론과 사회주의에 편향되어 미국의 가치관을 파괴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고발했다. 예일대에서의 학풍을 토대로 쓴 글이었지만, 사실 건국이념인 기독교정신을 잃어가는 미국사회 전반의 세속화와 가치관을 잃어가는 지식인들에 대한 고발장이기도 했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미국 보수주의 재건의 신호탄을 날렸다.
당시 버클리는 불과 25세였다. 5년 뒤 그는 지금도 간행 중인 격주간지 National Review (내셔널리뷰)를 창간해 보수주의의 이념정립과 대중적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5년이 미국 보수주의 부활의 원년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1955년 11월 19일 내셔널리뷰의 사명선언문에 버클리는 이렇게 썼다. “이 매거진은 역사를 가로질러 서서 ‘Stop’을 외친다.” (It stands athwart history, yelling stop!) 그는 중앙정부가 시민의 생명과 자유와 소유를 보호한다는 최소한의 역할 외에 그 어떤 활동도 자유를 축소하고 발전을 방해한다는 자유주의의 핵심가치를 믿었고,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인간사회를 개조하려는 사회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의 태도를 견지했다. 또한 공산주의는 공존을 추구할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60년에는 코네티컷 주 샤론에 있는 그의 자택에 미국 전역 24개주 44개 대학에서 90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여기서 그들은 미국 보수주의정신의 가장 중요한 문서로 여겨지는 그 샤론선언문(Sharon Statement)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을 기초로 현재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주의 청년학생 단체인 Young Americans for Freedom (YAF)가 생겨났고, 그렇게 재건된 미국 보수주의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도 이런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버클리도 사실 1950년대 초반까지 “보수주의자”라는 타이틀을 기피했다. “보수주의”에 덧칠된 기득권 이미지는 당시 미국사회에서도 혐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National Review를 통해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미국의 젊은 보수주의자들을 결집시켰듯이 보수주의에 대한 분명한 가치 중심의 이념정립과 범위의 규정을 통해 한국에서도 그러한 보수주의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미국 젊은 보수주의자들의 발자취를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그 시작으로 그들의 샤론선언문을 빌려 대한민국 보수주의를 정립하는 다음의 선언문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사미즈다트 코리아 선언 (가제)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 혼란과 자유민주가치관의 정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한국의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은 다음의 몇 가지 자명한 진리들을 다시한번 확언해야 할 시대적 책임을 진다.
젊은 보수주의자들로서 우리는,
1. 인간 상위의 초월적 가치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창조주가 부여하고 그 어떤 인위적 강제력으로도 구속할 수 없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있음을 믿는다.
2. 그 자유가 불가분하며 양도할 수 없다는 것과,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 즉 소유권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
3. 또한 정부의 목적은 내부적 질서와 대외적 국방, 그리고 정의의 집행을 통해 이 자유들을 지키기 위함에 있음을 믿는다.
4. 그리고 정부가 이 최소한의 기능 이상의 역할을 감행하려 할 때 질서와 자유를 감소시킬 수 있는 위험한 권력을 축적하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5. 따라서 헌법의 삼권분립을 통해 이러한 권력의 경향을 견제하여 정부가 적법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줌과 동시에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억제해야 함을 믿는다.
6. 또한 공급과 수요의 자유로운 균형원리를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시장경제는, 개인 자유의 요구와 입헌정치에 적합한 유일한 경제체계라는 것과, 동시에 이것이 인간의 필요에 가장 생산적인 공급자라는 것을 믿는다.
7. 그래서 정부가 시장경제의 원리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경우, 그것이 국가의 도덕적, 물리적 힘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믿는다. 가령 정부가 어느 사람의 것을 뺏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경우, 그것은 첫 번째 사람의 인센티브와 두 번째 사람의 , 그리고 두 사람 모두의 도덕적 자율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믿는다.
8. 또한 대한민국의 주권이 보장되어야만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과, 모든 적으로부터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들이 함께 협력해야 그 자유를 유지할 수 있음을 믿는다.
9.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과 그 자유에 있어 가장 직접적 위협은, 주체혁명통일을 통해 한반도 전역에 전체주의를 강제하려는 북한의 사교전체주의 집단이라는 것을 믿는다.
10. 또한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그 전체주의 치하에 있는 북한의 동포들을 구출해야 하는 인간적 도리와 국가적 과제가 남아있다는 것과, 이를 완수해 내는 것이 대한민국의 완전한 건국과 국가정체성의 확립을 이루는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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