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한국 보수의 갈 길, 미국 보수에서 찾다

진짜 보수주의를 알긴 하니?

“6.13지방선거 직후, 현 사회주의 정부의 폭주를 유일하게 견제할 수 있는 제1야당의 대표가 당의 ‘수구적 대북관’과 ‘우편향 정책’을 반성하는 ‘좌클릭’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우리 젊은 자유인들은 기존 보수정당에 그 어떤 기대와 미련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그토록 쉽게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치를 폐기해버리는 몰가치, 몰역사관, 몰의지의 정당은 설령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저 본질을 잃어버린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위 글은 2년 전인 7월 17일, 제헌 70주년을 맞아 고려대학교 트루스포럼이 대학가에 살포한 <사미즈다트(지하출판)코리아>라는 소책자의 서문에 쓴 내용이다. 보수정당에 대한 2년 전 이 진단은, 4.15총선이 지난 지금의 진단과 변함이 없다. 이제 차라리 ‘보수’ 타이틀을 버리겠다고 하니 오히려 다행이다. 다시 들어온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최근 회고록에 썼듯이 “보수라는 용어를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고서도 보수주의를 제대로 실천한다면 그것이 진짜 보수”인건 맞다. 그런데 비대위가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불과 며칠 전 어느 보수정치인은 “북한에 가면 공산주의가 보수”라고 했다. 사전적 의미의 ‘보수’ 이상의 보수주의를 전혀 모르는 눈치다. 보수를 “현상을 지키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조금 나은 경우도 기껏해야 보수를 “진보보다는 천천히 진보하는 것” 정도로 여긴다. ‘보수우파-진보좌파’라는 용어를 당장 전략적 차원에서 뒤로 숨기려는 것이라면 이해하겠다. 하지만 알맹이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껍질이나 벗겨버리자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혹시 아직도 더 민주당을 따라 해야 ‘중도’층이 이쪽에 기웃거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면 정말 한심한 오산이 아닐 수 없다. 100만원씩 준다는 정당이 있는데 50만원 준다는 정당에 올 이유가 없다. 차라리 300만원씩 주면서 “이거 원래 당신 돈이다”라며 메시징의 차별화를 두면 오히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보수의 진짜 가치를 모르니 계속 그런 사달이 난다. 그런데 정말 아예 모른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희망이 보인다. 뜯어고쳐 쓸 정도가 아니라 정말 밑바닥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진정한 보수주의는 “현재가 좋으니 현상을 지키자”고 하는 수구주의거나, 혹은 “혁명 이전의 과거가 좋으니 과거로 돌아가자”는 반동주의일 수 없다. 또한 보수주의는 “천천히 진보하자”는 점진주의도 아니다. 보수는 단지 진보의 “갈아엎자”라는 방법에만 저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추상(유토피아)을 추구하는 진보와 그 지향점 자체가 다른 것이다. 보수주의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한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에는 도덕이 전제되고 책임이 따른다는 진리를 안다. 진정한 보수주의는 자유와 방종을 구분한다. 이런 보수주의를 제대로 알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뉘앙스를 탓하며 버릴만한 보수주의가 아니다. 자신감이 생기면 매력이 따라온다. 매력이 있으면 사람들이 따른다. 보수가 계속 버럭 화만 내는 것도 사실 제대로 몰라서, 자신감과 확신이 없어서 그렇다. 가치관이 확실하면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너그럽게 한사람씩 차분하게 설득할 수 있다.

미국 보수주의 운동사를 알면, 한국 보수의 살 길이 보인다.

미국 보수는 어떻게 부활했나

곧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한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20세기 전반 뉴딜정책으로 장기 집권했던 경험을 모델로 삼으려는 듯하다. “공유경제”, “정부주도의 대규모 건설산업”, “복지확대” 등, 결국 지금보다 더 큰 거대정부 구축이다. 정부의 확대는 곧 자유의 축소다. 그렇다면 1950년대부터 미국 보수는 뉴딜로 태어난 거대정부를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얘기해보자.

최초의 보수주의 학생단체인 ISI는 원래 이름이 '개인주의자들의 대학연합'이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고전적)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이었다. ‘미국 보수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 Jr.)는 예일대의 좌경화를 고발한 책에서, 보수주의라는 용어 대신 아예 지금의 리버테리언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는 개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가 초대 회장을 역임한 미국 최초의 보수주의 학생단체인 Intercollegiate Studies Institute (ISI)도 원래 이름이 Intercollegiate Society of Individualists(개인주의자들의 대학연합회)였다. 보수주의가 아직 별다른 콘텐츠가 없었던 당시, 그들은 리버테리언 싱크탱크인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 (FEE) 의 자료를 배포하며 스터디를 했다. 레이건도 “보수주의의 심장과 영혼은 사실상 리버테리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776의 정신(건국정신)을 브랜딩한 미국 보수주의

그리고 미국 보수는 미국인들의 국가정체성에 호소했다. 그들은 1776년 미국 독립의 정신을 상기시켰다. 소위 “1776의 정신(the spirit of 1776)”을 브랜딩하여 미국의 탄생이 개인의 자유와 신앙 기반의 도덕질서에 뿌리박혀 있었음을 마케팅했다. 그리고 보수주의를 확산시키는 대중 잔치를 정기화했다. 바로 1974년 시작된 CPAC(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이다. 단순히 잠깐의 컨벤션 효과만 노린 것이 아니다. 시작부터 젊은 보수주의자들(Young Americans for Freedom)이 주도한 ‘젊은 보수 양성’의 일환이었다. 이들은 CPAC을 통해 보수주의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되찾고 소속감과 연대를 누리며 전략과 노하우를 공유했다. 그리고 여기서 로널드 레이건 같은 수많은 진짜 보수정치인들을 발굴했다.

한국 보수의 로드맵

양질의 보수주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프래거유

미국 보수운동사를 알면 한국 보수의 로드맵이 그려진다. 첫째, 무엇보다 자유를 핵심가치로 삼은 진짜 보수주의의 학습이다. 이해로 그치면 안 된다. 쿡 찌르면 보수주의와 보수가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자동반사적으로 나올 정도로 완전히 소화하고 통달해야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콘텐츠가 범람하도록 많이 생산되어야 한다. 보수진영에 각종 아카데미 등은 이미 많다. 사람이 모이지 않아서 문제다. 요즘은 젊은이들 개개인이 어디 모임에 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보고 흥미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모이고 공감하는 시대다. 널리 유통될 수 있는 콘텐츠의 개발이 우선이다. “보수주의”를 검색하면 클릭을 유도할 수준을 갖춘 제대로 된 콘텐츠가 첫 페이지를 가득 장식해야 한다.


결국, 나라 살리는데는 또 다시 이승만이 답이다.

둘째, 미국에 “1776의 정신”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1948의 정신”이 있다. 정확하게는 이승만의 <독립정신>이다. 이승만이야말로 “보수”라는 말 한반도 사용하지 않고 진짜 보수주의를 완전히 이해하고 구현한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다. 이승만에 대한 숱한 오해만 풀어도 대한민국의 보수는 반드시 회복한다. 또한 이승만은 정전협정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 국민이 보수의 가치와 자유의 소중함을 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바로 “북한의 우리 동포를 다시 찾고 구출하는 것”을 “한국 국민의 근본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미국의 건국이 링컨을 통해 흑인노예가 해방될 때까지 미완으로 남아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1948년 건국도 북한동포가 해방될 때까지 미완으로 남아있다. 한국 보수는 1948년 건국정신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북한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소위 ‘진보’들을 보수로 전향하게 만든 한 가지 이슈가 있었다면 그것은 북한인권문제였음을 기억하자.

셋째, 중국에 대한 미국과의 입장일치다. 한국 국민 과반 이상은 중국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우한 코로나와 홍콩사태 이후 더욱 그럴 것이다. 미국도 좌우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중국의 사회주의 실패와 현 친중 문재인정부의 미련을 부각시켜, 한국 보수가 미국과의 연대를 회복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중국과의 전면전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때 한국 보수는 양국의 보수진영이 모여서 단일대오 전선을 과시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CPAC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유명연사를 초청하고 브랜드만 빌려오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전략과 메시징을 완전히 일치시켜 같은 목소리로 국민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대중 잔치를 벌여야 한다.

레이건은 1977년 CPAC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떠한 철학을 팔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 [보수주의] 철학을 공감하고 있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현대 보수주의가 바로 그들의 정치적 본향임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사실 국민의 대다수는 보수다. 계속 드러나고 있듯이 진보는 그 자체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는 이미 보수주의 철학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만 다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