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로 일정이 잡힌 미 의회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
지난 3월 30일,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갔다. 이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확성기 방송, 시각 매개물 게시, 전단 살포 등을 할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작년 6월 북한의 김여정이 탈북자 및 인권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이를 저지할 법을 만들라고 요구하자 통일부가 즉각 관련 법률안을 검토하고, 반 년이 채 안된 12월에 정부와 여당이 해당 개정안을 강행처리해 북한정권에 상납한 것이다.
야당은 이 ‘김여정 하명법’에 항의하며 법사위 표결에서 퇴장하면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본회의에선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180석 거대여당의 입법독재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대해 국내 시민단체들 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영국, 체코공화국, 호주 등의 서방 정치권, 그리고 국제인권단체 등에서도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반인륜 독재정권인 북한의 일방적인 요구에 떠밀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주민들이 외부정보를 접할 권리와 탈북자 등 한국 시민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조치라는 것이다. ‘대북정보 재갈법(North Korea Information Gag Law)’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특히 미국 의회 산하 톰 랜토스(Tom Lantos) 인권위원회의 크리스 스미스(Chris Smith) 공동의장은 작년 12월 11일 성명서를 통해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은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북한 공산독재를 묵인하는 것이라고 높은 수위로 강력히 비판하면서, 올해 1월 중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관련 청문회를 열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미국 의회가 북한의 인권을 비판하는 청문회를 넘어, 동맹국인 대한민국의 반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대북정책과 국내의 자유억압을 이슈화하고 지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는 열리지 않았다. 현재 당초 예정보다 3개월이나 늦어진 4월 15일에 해당 청문회가 열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 의회 폭동사건으로 인한 혼란과 새 행정부 취임 등으로 미국 정치권이 동분서주했을 것을 감안하더라도, 취임식이 끝나고 2월이나 늦어도 3월 중에는 열렸어야 마땅한 청문회였다. 심지어 대북전단 살포활동을 이끌어 오던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박정오 ‘큰샘’ 대표는 해당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1월 말 미국으로 출국해 3월 초까지 워싱턴에 거주하며 대기하기까지 했다.
이들 탈북민 형제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보수연합행동대회(CPAC)와 미 국무부 등에서 대한민국의 친북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를 고발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 말미와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백악관을 방문해 대북정책 관련자들을 면담하기도 했다. 그 결과 미 국무부는 지난 3월 30일 공개한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의 한국 편에서 대한민국의 중대한 인권문제 중 하나로 ‘대북전단 살포 불법화 등의 표현의 자유 제한’을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방미 목적이었던 청문회는 끝내 열리지 못한 것이다. 미국 정치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재인 정권과 여당의 대미 로비 총공세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재인 정부의 총공세적인 대미 로비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남은 레임덕 1년의 윈도우 동안 또 다른 '평화쇼'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여당은 워싱턴에 막대한 자금을 풀어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방면의 대미 로비와 여론전을 펼치며 미국 정치권의 대북정책 관련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끼치려하고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의 대미 로비 자금은 작년 상반기 기준 1억 6500만 달러로 역대 최고 액수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과 이스라엘, 그리고 중국도 뛰어넘는 것이다. 이러한 대미 로비 공세는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기조를 수립하는 첫 100일에 또 다시 집중적으로 투하되고 있다.
우선 작년 12월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국제사회가 경악하며 반발했을 때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미국 북한전문 매체 <38노스>에 해당 법안을 변호하는 기고문을 올린바 있다. 송영길 의원은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미국의 입장을 정면 반박하며, 대북전단 살포행위가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궤변에 더해 대다수 탈북민들도 이 법안에 동의한다는 거짓말까지 늘어놓았다. 앞서 서호 통일부 차관도 또 다른 북한전문 매체 <NK뉴스>에 비슷한 논조의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1월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미 의회와 유엔에 같은 주장이 담긴 서한을 보냈고, 2월에는 북한 접경지역인 경기도 파주를 지역구로 둔 박정 민주당 의원이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잡지인 <내셔널인터레스트>에 관련 기고문을 실었다.
물론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접경지역 주민들을 위협한다는 주장은 견강부회다. 대부분의 대북전단 살포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주민이 없는 외딴 지역에서 풍선 등을 날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민간인이 보내는 풍선에 대해 북한이 살상무기인 고사포로 맞대응하는 것을 두고, 북한군의 위협적이고 무책임한 만행을 비판하기보다 되려 자국민을 위협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상적인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 또한 여당이 근거로 내세우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대북전단금지법 지지선언과 성명서도 모두 작년 6월 김여정의 관련법 개정 주문 이후에야 정부여당에 의해 급히 동원되었던 것으로 드러난바 있다. 오헤어 킨타나(Ojea Quintana)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도 “시민사회 단체들의 접경지역 활동과 이 활동이 미치는 위협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가 증명된 바 없다”고 지적했다.
청문회 저지 위해 미국 내 친북세력 총동원
송영길 의원의 기고에 이어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의 미주 지역 지부도 “대북전단금지법은 인권을 살리는 평화법”이라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2017년 문재인 정권 집권 이후 거의 종북 수준의 극좌 인사들로 완전히 물갈이된 평통 미주 지부들은, 사실상 미 의회 등 해외 정치권과 언론을 대상으로 북한 정권을 위한 로비활동의 주체로 활약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내 친북성향의 한인단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평통의 이 논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일제히 대북전단금지법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월 4일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4.27민+평화 손잡기 미주 위원회’는 워싱턴 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한 청문회를 열지 말 것”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29일에는 미국 전역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는 대표적인 친북단체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도 미국이 한국의 법안에 대해 청문회를 열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라는 서한을 의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재미 한인단체들의 영향력은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지난 116대 의회에서는 미주 한인 유권자 단체인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이 로 카나(Ro Khanna) 하원의원을 포섭해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한국전쟁 종전선언 결의안’을 발의하게 했고, 로비활동을 총동원해 코로나(COVID-19) 락다운 시국에도 짧은 시간 동안 민주당 51명과 공화당 1명의 지지서명을 받아냈다. 비록 117대 의회가 시작되면서 발의안은 폐기되었지만, 이들은 이 경험을 통해 극진보성향의 의원들만 공략해 초당적인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는 교훈을 얻고 이번에는 보다 전략적으로 무게감 있는 중진의원을 발의자로 포섭해 확장성을 키우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한인유권자 단체인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도 비슷한 교훈을 얻고 로비 전략을 수정하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 뉴스와 언론에도 재미 한인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종종 소개되는 김동석 KAGC 대표는, 최근 평통 주최 강연회에서 한국전쟁 종전선언 결의안을 성사시키려면 “중도적인 의원들을 전략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며, 미 정치권이 극심하게 양극화된 현 상황에선 최대한 "공화당 쪽 의원들도 공동 발의자로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서도 청문회 자체를 막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정면 돌파해 청문회를 미국 정치권을 설득할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공화당 인맥에도 손을 뻗치는 문재인 정권
흥미롭게도 이런 친북적 재미한인 단체들의 입장에 교감이라도 한 듯, 한국 정부는 이에 발맞춰 필요한 지원사격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주미대사관은 여야의 거물급 정계 인사들이 속해있는 브라운스타인 하야트 파버 슈렉(Brownstein Hyatt Farber Schreck)이라는 로비스트 회사와 6개월 동안 월 3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을 맺었다. 섬뜩한 사실은 한국 정부가 이 회사에서 콕 집어 고용한 인물이 에드 로이스(Ed Royce) 전 하원 외교위원장과 마크 베기치(Mark Begich) 전 민주당 상원의원이라는 것이다. 26년의 공화당 의원 생활을 한 에드 로이스는 대표적인 친한파 인물로써 북한 인권문제에 매우 강력한 목소리를 내오며 탈북민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로이스 하원 의원실에서 오랫동안 정책보좌관을 지낸 영 킴(Young Kim, 한국명 김영옥) 의원이 현재 117대 의회 하원에 입성해 있다.
에드 로이스 전 의원은 하원 시절 미 의회 북한인권법을 강력하게 지지해 왔으며 한국정부의 친북적 행태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2004년 시행된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매년 “자유로운 대북 정보 유입 활동” 등에 미국이 200만 달러를 지원하는 근거가 되는 법안이다. 반면 대북전단금지법은 대북 정보 유입을 차단하는 법안이다. 에드 로이스 전 의원은 이제 한국 정부에 고용되어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지지했던 북한인권법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법안을 위해 로비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로이스 의원이 거액의 인센티브를 받는 입장에서 과연, '한국의 현 정부'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한국'에는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리고 그가 그토록 열심히 싸워왔던 북한인권 증진에는 얼마나 반하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만약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대북전단금지법을 변호하는 논지를 펴고 한국전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편에 선다면 정말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종전' 주장한 퀸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증인으로 참석
이는 현재 (4월 10일 기준)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로 예정된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를 더욱 심각하게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의 집요하고 전략적인 로비 공세에도 불구하고 뒤늦게나마 열리게 되었지만, 그 결과가 기대했던 만큼 마냥 대북전단금지법을 규탄하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증인으로 섭외된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 중에는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고든 창 변호사,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등으로, 현재 친북적인 문재인 정권을 호소력있게 강력히 비판할 수 있는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민주당에서도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와 퀸시연구소의 제시카 리 선임연구원을 증인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퀸시연구소는 보수성향의 연구소를 표방하고 있지만 한반도 종전협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도 하는 등 외교적으론 고립주의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싱크탱크다. 특히 이번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하는 제시카 리 선임연구원은, 작년 3월 친북성향의 단체인 위민크로스DMZ와 퀸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라운드테이블에 발제자로 참여해 '이제 한반도에 종전과 평화를 안길 수 있는 문재인이라는 파트너가 있다'라는 취지로 발언을 하기도 했고, 또 지난 12월 기고문에서는 바이든 신임 행정부가 임기 100일 내에 한반도 종전을 선포하고 평화협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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