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레이건 대통령 조지타운 대학 창립 200주년 행사 연설 (1988년 10월 1일)

로널드 레이건이 1988년 10월 1일, 그의 임기 말년에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 이 연설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짧은 연설이지만 그의 가장 철학적인 연설 중에 하나이다. 그는 자유와 신앙이라는 미국의 "쌍 등대"를 이야기하며 이 필수적인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결국 교육이 최선이라고 설파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대학인 조지타운 대학의 200주년 연설에 알맞는 주제이기도 했지만, 자유-신앙-교육이라는 보수주의의 핵심을 잘 설명한 명연설이다.




감사합니다, 힐리(Timothy S. Healy) 신부님, 프리즈(J. Donald Freeze) 신부님, 그리고 진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 대사님.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워싱턴에서의 저의 임무를 마쳐가는 이 시기에 이 같은 명예와 여러분이 지금 저에게 주신 큰 환영을 받는 것은 정말 큰 특권입니다.


이 자리에 서니 저는 어떤 대단한 인물에 대한 일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일류 학자였고 과학자였고 또 인도주의자였던 그는 위대한 고등교육기관에서 명예학위를 받은 분입니다. 그를 소개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는 위대한 사람, 고결한 사람, 용기있는 사람, 명예의 사람, 그리고 전 세계가 감사의 빚을 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라고요. 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지금 한 것처럼 단상에 서서 관중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는 관중을 한번 보고 뒤돌아 자신을 소개한 사람을 돌아보더니 이렇게 말했지요. “왜 내가 얼마나 겸허하고 겸손한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웃음]


글쎄요. 그와는 다르게 [웃음] 여러분이 저에게 주신 환영은 정말 저를 겸허하고 겸손하게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주시는 학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가신 저의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드렸을 것입니다. 항상 제가 의사(닥터)가 되길 바라셨거든요. [웃음] 물론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조지타운 대학교의 20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지타운에 대해 큰 애정이 있

습니다. 이 나라에 있는 제 나이보다 오래된 몇 안되는 대학 중에 하나이거든요. [웃음] 조지타운이 처음 생겼을 때 우리의 헌법이 설계한 정치체계도 처음 시작되고 우리의 첫 대통령도 선출되었습니다. 조지타운은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카톨릭 대학이지요. 그리고 미국의 정치체제도 지난 2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체제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눈에만 오래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지난 2세기는 그 의미가 오직 그분에게만 알려진 아주 짧은 시간의 돌진이었을 뿐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미국과 조지타운으로 기뻐하시길, 그리고 이 둘을 특별한 애정과, 가끔은 여느 조숙한 아이가 아버지에게 일으키는 격분으로 바라보시길 희망합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조지타운이나 이 미합중국이나 그 유아기에 있으며 우리 안에 가장 최상의 것과 가장 고결한 것을 시험하는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실험이 끝날 것이라고 상상할 근거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 참혹한 남북전쟁 때처럼 선의의 사람들이 미국의 실험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서로 싸우며 나라를 산산이 찢어 놓고 다시 더 자유하고 더 나은 곳으로 재집합 시켰지요. 이 두 세기 동안 다른 곳에서도 끔찍하고 지독한 실험들이 있었습니다. 이 실험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얼마나 견고하고 신실한지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트레블링카(Treblinka) 강제수용소의 샤워실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혹은 카틴(Katyn) 숲 학살과 같이, 사람들이 비통과 절망속에서 다시한번 범죄하는 민족들을 대홍수로 쓸어 버리시길 기대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혹은 “최선의 무리들은 모든 신념을 잃었고, 최악의 인간들은 열렬한 경정에 가득 차 있는” 세계 앞에 기겁했던 시인 예이츠(W. B. Yeats)와 같은 심정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겠습니다. 예이츠는 말했지요. “분명 어떤 계시가 가까이에 있다. 분명 재림이 가깝다.”


바로 어제 우리는 우리 세기 속의 어두운 한 날을 기념했습니다. 뮌헨 조약 서명의 50주년이었지요. 50년 전 이날,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수상은 영국으로 돌아와서 “우리 시대의 평화”를 가져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로부터 11개월 후 나치독일은 폴란드를 침략하고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못한 악몽을 그 나라에 안겨주었지요. 그리고 세계는 전쟁에 던져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것들이 최선의 것들을 패배시킬 운명의 순간에, 최선의 것들은 스스로로부터 무언가를 끄집어 내어 파멸을 면했습니다. 결국 세개의 야만적인 정부가 제거되었고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은 이제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서로 싸웠던 나라들과 땔 수 없는 동맹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공산주의의 멍에 아래 살고 있지만, 그들은 인간영혼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억압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그들을 일으키는 위대함이 우리로 하여금 놀라움으로 숨을 멎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KGB의 억류자들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나탄 샤란스키가 활주로에서 갈짓자로 걸었던 것을 생각합니다. 그는 그를 자유로 데리고 온 비행기에서부터 눈이 가려진 체 직진해서 걸으라는 억류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죠. 이럴 때 우리는 웃음과 눈물이 뒤섞입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지요. 그것은 인간이 아는 가장 순수한 자유의 모습입니다. 동기가 정의롭고 믿음이 그의 등대인 사람의 자유이지요.


자유가 만개했을 때, 그것은 사회의 첫째 원칙입니다. 바로 이 사회, 서구의 사회이지요. 정말 아브라함부터 플라톤(Plato)까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부터 아퀴나스(Aquinas)까지, 자유는 서구문명의 생기를 주는 원칙이었습니다. 독립선언문의 숭고한 낱말이거나 샤란스키 같은 사람들의 고결한 영혼과 같이, 자유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지요. 하지만 자유는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학교의 2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분의 주제가 매우 적절합니다 – 배움, 신앙, 자유. 이 셋은 서로를 보강하며 각자 서로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 셋이 서로가 없으면 그 스스로 무엇이겠습니까?


배움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신앙과 자유를 향한 사랑으로 연단되지 않으면 그것은 실로 매우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부터 레닌까지, 또 호치민부터 폴포트까지, 수많은 지식인들의 이름이 악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배움이 없이 지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지만, 또한 배움만으로는 결코 지혜를 얻지 못한 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배움은 악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배움의 존중과 자유의 이해가 없는 신앙은 무엇을 가져다 줄까요? 우리는 이란의 최전방에서 14살 소년이 기관총을 손으로 감싼 체 끔찍하게 죽는 것을 통해 조절되지 않은 신앙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배움과 신앙이 없는 자유는 어떤 것을 초래할까요? 바이마르 독일의 면허와 로마제국의 타락; 도덕적, 영적, 지적 한계로 조절되지 못한, 바로 G. K. 체스터턴(Chesterton)이 “항상 정상을 비정상에 희생하는 병적 유약함”이라고 표현한 인간 행위입니다. 자유가 이렇게 망가졌을 때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말했던 비자유가 곧 따라오지요.


그래서 우리는 미국이 배움과 신앙과 자유, 이 세가지 모두의 지도를 받기 때문에 미국은 다르다고 믿고 싶고 그렇기를 기도합니다. 지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이 나라를 세계의 지적, 기술적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수호하고 보전하려는 우리의 헌신은 확고부동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지탱합니다. 1835년 토크빌이 말했 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됩니다. “폭정은 신앙없이 통치할 수 있더라도, 자유는 그렇지 못하다. 종교는 다른 곳보다 민주적 사회에서 더 필요하다.”


미국인들은 이 말의 진리를 압니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를 여전히 믿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지식을 믿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유를 믿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우리가 누리는 풍요를 제공하는데 헌신적이고, 우리는 인간의 권리를 부정하며 인류를 모욕하는 사회들에 구역질이 납니다. 우리는 지난 10년동안에도 자유를 부정당하고 소멸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비통해하며,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이 그들의 죽음이 헛것이었다고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들을 모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우리가 우리의 원칙들을 진실되고 굳게 잡는다면 우리 시대가 자유의 시대였다고 알려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구상의 사람들을 노예화하고 희생시키는 통치자들은 이념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조짐들이, 물론 조짐들만, 있습니다. 그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실패하고 끔찍한 철학들은 어느때보다 공허합니다. 그들이 유토피아로 설계한 사회들은, 완곡하게 말해서,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들이 매도하던 민주적 사회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통치자들이 우리 번영의 비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이유는 오직 그 국민들이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것, 그들이 말하고 읽고 생각할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고 건설하고 교역하고 판매할 자유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역사의 전환점으로 빠르게 이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우리의 시대를 자유의 시대인지 아니면 야만의 시대인지 판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신념의 방어와 우리 사회의 방어에 굽히지 않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뮌헨의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들이 유럽에서 소련의 핵 우월성을 받아드릴 때가 왔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결코 그것을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지배를 받아드려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결코 받아드릴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앙골라와 니카라과의 소련 프록시들을 격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결코 받아드릴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압니다. 지난 8년 동안 단 1인치의 땅도 공산주의에게 양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공산주의 지배에 빠져 “오직 무정부상태”에 이른 그레나다(Grenada) 섬을 해방시켰고 민주정의 길로 올려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른 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구해 내어 내전 속에서 민주정으로 개화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바로 엘살바도르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련이 압력을 가한 지도상 모든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원해 그들에게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 시대에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던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바로 전체주의 물결의 후퇴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한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들었을 소문과 달리, 저는 워싱턴에 왔을 때 저와 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워싱턴에 올 때 가졌든 신념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들은 우리가 굳게 잡았던 정책들의 성공으로 입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전세를 유지해야 할 역사적 사명, 즉 우리의 원칙들에 충실하며 우리의 배움과 신념과 자유의 교훈들을 적용해야 할 바로 이때, 우리들의 몇몇 출중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세상을 보고 미국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고 판정합니다.


미국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고요? 오웰은 어떤 생각은 너무 멍청해서 오직 지식인들만 그것을 믿는다고 했지요. [웃음] 글쎄요. 아마도 이것은 오늘날 가장 멍청한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세계가 알고 있는 가장 풍성하고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가 기울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난 거의 6년동안 끊임없는 경제회복을 경험했지만, 그들은 우리가 기울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우리가 내리막길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구의 너무 많은 영역을 커버하고 있고 우리의 군사적 책무가 너무 광대하고 어려우며 우리가 과잉팽창이라는 상태에 허덕이고 있다고 그들이 믿기 때문입니다. 과잉팽창이라고요? 글쎄요. 다음의 사실들을 고려해보십시오. 1955년에 우리는 국민총생산의 11퍼센트를 국방에 소비했습니다. 1988년에 우리는 6퍼센트를 사용합니다. 저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액수이지요. 과잉팽창이라니요! 1955년에 우리는 3백만 이상의 미군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2백만 정도의 미군이 있습니다. 과잉팽창이라니요!


그리고 여러분이 무엇을 들었든지간에, 최고사령관인 제가 여러분께 한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핵무기를 축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핵무기의 비축량은 20년 전 오히려 3분의1 정도 더 많았습니다. 오늘 날 우리의 무기는 더 가벼워졌고 더 정확해졌으며, 우리를 강하게 함으로서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과잉팽창이라니요!


저는 지난 8년 동안 국가의 조타실을 책임지는 영광을 얻은 사람으로서 여러분께 어느정도 권위를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미국은 내리막길에 있지 않습니다. 미국은 아직 젊고 여전히 매우 유망하며 그 약속을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아직 그 정점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슬프게도 내리막을 말하는 거짓선지자들은 믿음을 취해야 할 때에 불필요하게 믿음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그 아이디어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자유하려는 인간의 투지와 우리의 창조주가 정한 운명을 믿는 믿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진심으로 우리가 자유의 시대에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선사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조지타운 대학이 여러분에게 선사한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께,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에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