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레이건의 전도편지와 보수주의

Updated: Jan 13, 2020

지난 9월 14일 워싱턴포스트지에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레이건 대통령의 편지가 공개되었다. 영부인 낸시 레이건의 전기를 집필 중인 캐런 터멀티(Karen Tumulty) 기자가 낸시의 유품에서 처음 우연히 발견한 이 편지는 다름아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종 직전에 있는 그의 장인 로얄 데이비스(Loyal Davis)에게 보낸 ‘전도편지’였다.

이 편지는 레이건 대통령이 임기 2년 차인 1982년 8월 7일 로얄이 숨을 거두기 12일 전 백악관 사무노트지 네 쪽에 쓰인 것으로 레이건의 솔직함과 간절한 정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손글씨 편지다. 손편지에서 흔한 잉크 번짐이나 삭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먼저 글을 정리하고 옮겨 쓴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장에는 레이건, 로얄, 혹은 낸시의 눈물 자국일지 모르는 몇 개의 물 번짐도 보인다.

“친애하는 로얄(장인어른)께, … 사실 한동안 이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레이건은 본인이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하나님의 치유 손길을 경험한 지극히 개인적인 간증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약간은 서두르듯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한다. 외과 의사이자 오랫동안 무신론자임을 공언한 장인이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내용일 것이라는 솔직한 심정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의 33년 짧은 생애는 창조주의 구원사가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자체로의 기적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레이건이 차용하는 변증은 다름아닌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 나오는 ‘미치광이, 사기꾼, 아니면 구세주’(Lunatic, Liar, or Lord) 변증법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용하며 장인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영광스러운 영생을 누릴 것을 정중히, 그러나 확고하게 권유한다.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본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락없는 전도편지다.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레이건의 깊은 신앙뿐 아니라 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간절함을 엿보게 된다. 낸시의 고백에 의하면 로얄은 사위 레이건의 이 정성어린 편지를 받고 사망 이틀 전 병원 원목을 불러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한다. 惡의 세력과 투쟁했던 레이건

기억할 것은 레이건 대통령이 이 편지를 쓸 당시 그는 소련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의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편지를 쓰기 불과 2개월 전 그는 영국 의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행진이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역사의 잿더미(ash heap of history)’에 묻어버리게 될 것을 예고했다. 이 편지를 쓰고 7개월 후인 1983년 3월 8일에는 그 유명한 ‘악의 제국(evil empire)’ 연설을 통해 소련에 대한 승리의 구도를 확립하여 머지않은 소련 붕괴의 신호탄을 날렸다.

이 연설에서도 레이건은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인용하며 전체주의 악의 전략을 드러낸 바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전체주의의 위협에서 자유세계를 구하는 그 역사적 사명의 순간에도 레이건은 한 영혼에 대한 복음 전파의 열심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냉전을 종식한 대통령, 보수주의자, ‘위대한 소통가’이기 전에 무엇보다 진정한 크리스천이었고 그 영적 인간관으로 각 영혼을 전심을 다해 바라봤다.

<하나님과 레이건> (God and Reagan)이라는 책을 쓴 폴 켄고르(Paul Kengor)는 이러한 레이건의 ‘전도편지’가 한 두 건이 아니라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다고 증언한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받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의 편지에 직접 손글씨로 답변하며 레이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레이건의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크리스천 유권자들의 표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스탠스가 아니었다.

레이건의 기독교 신앙과 깊이는 그의 국가관과 모든 정책적 행보의 원천이 되었고, 심지어 잘 알려진 그의 탁월한 유머 감각도 확고한 믿음과 확신을 바탕으로 하는 여유에서 나왔다. 무엇보다 레이건의 보수주의는 단연 기독교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국의 보수정치가 배워야 할 레이건의 보수주의

이 편지를 통해 드러나는 레이건의 영혼 사랑과 보수주의 세계관은 다시 한번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람 중심’ 전체주의 위협에 맞서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탄핵사건 이후 속수무책으로 궤멸되고 있는 한국의 보수 세력은 여전히 그 혼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 혼란은 한국 보수주의의 가치관 부재를 확연히 드러내는 뼈아픈 그러나 매우 필요한 경험이다. 이것은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정치철학적 기초를 한국에서 아마도 최초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세력은 침착한 제정신으로 근본을 되돌아보기보다 여전히 자기 연민적 비명을 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혼란을 틈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마약과 같은 저속한 배타성, 비상식적인 과도한 음모론 그리고 또 다른 인민 전체주의를 낳는 집단의존성만 증폭되고 있다. 보수주의의 정치철학적 계보를 최초로 정리해 1950년대 미국 건국정신 회복의 지적 기반을 다졌던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이 올해 들어서야 번역이 되어 회자되고 있지만, 여전히 보수주의를 불과 그 방법론에 해당하는 ‘관습적 전통의 옹호’ 혹은 ‘점진적 변화’로 치부하는 경향이 팽배하다.

그러나 <보수의 정신>에서 커크가 내세웠던 주장의 핵심에는 무엇보다 인간 상위의 초월적 질서, 즉 창조주에 대한 믿음과 그 전통이 있었다. 이는 그가 나중에 써낸 <미국 질서의 기원>(Roots of American Order)에 더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 커크는 그의 전작에서 보다 성숙하고 폭넓게 보수주의의 기원을 추적하는데, 그 뿌리를 영국의 자연법 전통을 넘어 그 저변에 있었던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찾고 있다.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 Jr.)가 자유진영에서 매우 영향력이 컸지만 극단적 무신론자였던 아인 랜드(Ayn Rand)를 철저히 배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60년 80여 명의 미국 보수주의 대학 청년들이 버클리의 자택에 모여 선언한 샤론선언문(Sharon Statement)도 그 첫 번째 항목에 ‘창조주가 부여한 개인의 자유의지(God-given free will)’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 선언문은 여전히 미국 보수주의를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담아낸 기념비적 가치선언으로 평가되고 있다.

얼마 전 러셀 커크의 100주년 생일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 샤론선언문을 발표할 당시 주역이었던 몇 명의 보수주의 거목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필자가 이들에게 물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커크와 버클리가 설파한 보수주의를 친구들에게 설명하다 보면 결국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나의 주장을 보게 됩니다. 이게 맞는 겁니까?” 이제 노년이 된 그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보수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네.” 대한민국 유일의 보수 정론지인 <미래한국>의 ‘미래한국의 길’에 첫째 “역사의 주관자”와 둘째, “창조의 법칙과 질서”에 대한 신념이 담긴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날이 갈수록 노골화되는 좌익세력의 폭주에 대한 극심한 분노와 혐오는, 한쪽에선 망연자실을 유도하는 좌절과 자조적 빈정거림을, 다른 쪽에선 극단적 음모론과 집단심리에 의존한 배척과 저주를 끊임없이 확대, 생산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경향이 대중을 깨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전술적 분위기 조성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냉소와 저주의 분위기에 스스로 휩쓸리지 않고 정 방향으로 조종할 수 있는 건강하고 무게 있는 정치철학적 신념이 과연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대한민국의 깨어 있는 크리스천 보수주의자라면 이러한 경향을 분별하여 경계하고 참된 보수주의의 신념적 기초와 영혼 사랑의 마음 바탕을 차분히 재고할 필요가 있다. 레이건의 전도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세계를 전체주의의 수렁에서 건져내는 위대한 시대적 사명을 짊어진 그도,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시는 한 영혼을 향한 창조주의 열심보다 결코 앞서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장인에게 보낸 ‘전도편지’ 全文

1982년 8월 7일

친애하는 장인어른께,

무례하다면 용서를 구합니다만, 사실 지난 번 전화 통화 이후로 계속 이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지금 많은 고뇌를 겪고 계신 것을 알고 있고 이에 대해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먼저 오랫동안 비밀로 했던 한 가지 개인적 경험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있었던 첫 해의 상황은 지금 워싱턴에서 대통령으로 겪고 있는 상황만큼이나 어려웠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산적한 문제들은 끝이 없고 해결 불가능해 보였지요. 그때 저는 위궤양이 생겼었습니다. 워너브라더스에서 고생했던 때도 궤양을 앓지는 않았었는데, 주지사가 되고 위궤양을 앓게 되니 저는 이것이 저의 약함으로 보일까 부끄러웠습니다. 존 샤프(주치의?)가 말록스를 처방해줬지만 저는 항상 속이 불편하거나 아주 날카로운 위경련을 겪는 등 언제나 고통을 안고 살았었습니다. 이 고통은 몇 달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말록스 약병을 제 책상과 가방, 그리고 집에 항상 챙겨 둬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 가서 여느 때처럼 약병을 찾았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약병이 필요 없어진 (고통이 없어진) 것입니다. 전날 밤에 분명 통상적인 고통 속에 잠이 들었는데 그 날 아침 궤양이 말끔히 고쳐졌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말록스를 다시 선반에 돌려놓았습니다.

그 날 아침 제가 집무실에 도착하자 헬렌(비서)이 저에게 온 편지들을 가져다줬습니다. 처음으로 연 편지는 남부지역의 어떤 낯선 여성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위해 기도하러 매일 모이는 어떤 모임에 속해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놀랍게도 또 다른 모르는 남성이 보낸 것이었는데, 이 분은 캘리포니아의 반대쪽 지역에서 저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매주 모임을 갖는 분이었습니다. 또 그로부터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법무팀의 직원이 무슨 일상적인 업무 때문에 집무실에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 직원이 나가는 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지사님,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직원들 몇 명이 매일 아침 좀 일찍 출근해서 모여 주지사님을 위해 기도한답니다.”

우연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주 뒤에 낸시와 저는 LA로 가서 정기검진을 받았지요. 그런데 존 샤프는 약간 혼란스러워 하며 저에게 말하길, 위궤양이 더 이상 없을 뿐만 아니라 위궤양이 있었던 흔적조차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맹세컨대 저는 그에게 그 치유가 있었던 날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중략)

아마 의사이신 어르신께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답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르신, 저는 그 사건보다 예수님의 생애 그 자체가 더 큰 기적 같습니다. 그가 스스로에 대해 증언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역사상 최고의 날조자이자 사기꾼이겠지요. 하지만 그가 거짓말쟁이.사기꾼이라면 그런 고통스런 죽음을 당하셨을까요? 그냥 거짓말을 시인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요.

진짜 기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학자로서나 성직자로서 아무런 신임도 없는 30세 청년이 거리 모퉁이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걸친 옷자락 외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그가 이동한 거리는 지름 100마일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과 3년 동안 이 일을 하시고 일반 범죄자와 다를 바 없이 처형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0년 동안...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선생들과 과학자들과 황제들과 장군들과 제독들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세상에 남기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받은 약속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 뒤 우리의 힘과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기만 한다면 그분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저 그의 무한한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신뢰하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르신, 어르신과 장모님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큰 사랑을 누리셨습니다. 이 생애의 끝으로 그 사랑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이 오직 삶의 일부분일 뿐이고 앞으로 더 큰 생명과 더 큰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모두 함께 할 그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어르신은 단지 이것을 믿고 하나님의 손에 스스로를 맡기신다고 하나님께 말씀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위 로니 드림.

출처 : 미래한국(http://www.futur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