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자유공화 정치철학의 원천, 성경

Updated: Jan 22, 2020

어느 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유 민주 공화국 체제를 처음부터 새로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은 어떤 책들을 참고하며 논쟁을 하게 될까? 이미 성공한 우수한 국가체제 모델이 없다면, 누구의 정치철학 저작들을 우선적으로 참고하며 정부 제도와 조직을 구상하게 될까?


18세기 후반 미국이 그런 상황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13개 주 시민들은, 계속되는 영국의 부당한 과세와 폭정에 분노하며 독립혁명을 꿈꿨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토론과 강론을 펼치며 어디에도 없었던 가장 뛰어난 새로운 국가체제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그들은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789년 헌법을 세워 미국을 건국했다. 그렇게 미국은 현존하는 국가체제 중 가장 뛰어난 헌정 자유 공화(constitutional free-republic)제도를 수립하고 세계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미국의 건국자들은 무엇을 사상의 원천으로 삼았을까?


성경을 참고해 건국한 미국

정치학자 도널드 룻츠(Donald S. Lutz)는 1760년부터 1805년까지의 15,000건의 미국 정치 문헌들을 조사해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들이 독립혁명 당시 어떤 책을 가장 많이 참고했는지 연구했다. 가장 많이 인용된 인물은 역시 영국의 존 로크(John Locke)와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Montesquieu), 그리고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Blackstone)이었다. “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여겨지는 존 로크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 정치사상가로서 사회계약 이론, 정부 권력 분립, 국교 분리, 종교자유, 관용 등을 주창해 자유 민주 헌정 공화 정치 제도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56명의 미국 독립 선언서 서명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헨리 리(Richard Henry Lee)는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로크의 <통치론 1,2> (Two Treatises of Government)을 베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미국 건국지도자들이 존 로크보다 무려 두 배 이상 인용한 책이 있었다. 바로 구약의 신명기다. 신약의 바울서신도 몽테스키외와 블랙스톤만큼 인용이 되었다. 루츠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건국 당시 정치 문헌에서 성경이 인용된 비율은 전체 인용의 34%였다. 신정국가가 아닌, 소위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었다고 여겨지는 미국의 “세속” 정치 체제와 제도를 수립하는데 성경이 가장 많이 참고된 것이다. 구약에서 신명기 다음으로는 이사야,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순으로 인용이 되었고 신약에서는 바울 다음으로 베드로와 요한(사도) 순으로 많이 인용되었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건국지도자들이 세 번째로 가장 많이 인용한 정치철학자 존 로크의 사상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은, 그것도 역시 성경이라는 것이다. 많은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로크가 세속적 정치철학자이고 기껏해야 이신론자(deist, 창조주 신은 존재하지만 창조 후 더 이상 인간사회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심각한 거짓말이다. 존 로크는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을 뿐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고 바울서신에 주석을 쓸 정도로 성경을 잘 알았다. 더 놀라운 것은, 두 권을 합해서 400쪽 미만인 로크의 대표작 <통치론>에서 그가 인용한 성경 구절이 무려 121개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로크는 성경의 6개 장과 한 권의 책 전체(잠언)도 인용한다. 거의 3-4쪽마다 성경을 인용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로크는 <통치론 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입법자들이 만드는 모든 인간 행동의 규칙은 반드시 … 자연의 법, 즉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어야 한다. 인간의 법은 일반적인 자연의 법에 따라, 그리고 성서의 법과 모순이 없이 만들어져야 한다.”


미국 건국지도자들과 성경

그러면 미국 건국자들은 단지 신앙이 좋아서, 혹은 당시 사회 문화적 관습을 따라 성경을 참조한 것일까? 56명의 미국 독립 선언서 서명자 모두(1명의 가톨릭을 제외하고 개신교)를 포함해 대다수 미국 건국 아버지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믿음이 좋아서” 성경을 참고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경을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공화 정치 철학의 원천으로 여기고 인용했다. 먼저 성경에 대한 그들의 인식들을 몇 개만 살펴보자.


미국 독립과 건국의 대표적인 세 개 문서(1776년 독립 선언서, 1783년 파리 조약, 1789 미국 헌법)에 유일하게 모두 서명한, 미국에서 “첫 번째 미국인(First American)”이라고 알려진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가정과 모든 좋은 학교에서 공부되고 그 가치가 존중되는 성경은, 신문과 더불어 미덕과 도덕 그리고 시민의 자유를 지탱하는 제1의 원천이다.” 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는 아예 “성경은… 가장 공화(주의)적인 책이다.”라고까지 말했다. 미국 영어 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건국 지도자 노아 웹스터(Noah Webster)는 이를 조금 더 설명한다.


"성경은 … 공화주의 원칙들의 최고의 원천이고 근간이다. 동등과 권리와 책임의 원칙들이 성경에서 나오고 모든 폭정을 금지함과 동시에 법치와 질서를 존중하게 한다…. 기독교의 가치관을 버리거나 파괴하면, 공공질서와 자유, 그리고 공화국의 기초가 흔들릴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성경이 바른 공화주의 원칙의 참 원천임을 일찍이 깨달아야 한다"

“미국 정신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의사이자 또 다른 건국 지도자 벤저민 러시(Benjamin Rush)도 시민 정부의 공화 제도가 효과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 성경의 도덕적 가치들이 필수적이라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성경은 공화주의 정신을 구성하는 인류의 동등함과 법의 존중, 그리고 모든 사소한 미덕을 알려준다.” 건국 지도자 제임스 맥헨리(James McHenry)도 “성경만이 …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보장하고 법원과 정부에 청렴과 안정과 효용을 더할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악한 일을 추구하면 양심에 큰 찔림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건국지도자들의 독립 공화국을 설립하며 가졌던 성경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다 적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분명 성경의 가르침을 토대로 삼아 자유 공화국의 헌법적 기초들을 세우고 헌정 자유 공화국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국 바로 직후 세대인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대통령은 “우리 공화국이 세워진 반석은 바로 성경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훗날 미국의 현대 지도자들도 이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은, “이 나라 법에 가장 기초가 되는 근간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은 그것입니다. 우리 권리장전의 근본적인 기초는 출애굽기와 마태복음, 이사야서, 그리고 바울서신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1983년을 “성경의 해”로 선포하며 했던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 미국을 특별한 국가와 사람들로 만든 여러 영향 중에 성경보다 그 영향이 더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것은 없습니다…. 성경과 그 가르침은 우리 건국지도자들이 개인의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각 개인의 내재적 가치와 존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그 권리들을 찾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찾는 정치철학

그렇다면 성경을 근거로 한 공화주의 정치철학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기본적으로 대의제(representative government) 자체가 성경에서 나온 원리다. 바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의 장인 이드로의 권면을 통해서 수립한 제도이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출애굽기 18).” 모세는 이 “대의제”를 수립한 과정을 신명기 1장에서 다시 설명하기도 한다. 건국지도자들의 기록들과 당시 문헌들을 보면 실제로 그들이 이 구절들을 인용하며 대의제를 주장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선출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공화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철학은 권력 분리(separation of powers) 혹은 삼권분립(tripartite government)이다.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부를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로 나눈 것이다. 이것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철학일까? 훗날 미국의 2대 대통령이 되는 존 애덤스는 건국 당시 제헌의회에서 정부 권력의 제한과 분리를 주장하며 이런 발언을 한다.


"다수의 지지를 받고 결국 스스로를 충족시킬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부정을 기대하는 것은 모든 역사와 보편적 경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애덤스는 삼권분립이 필요한 이유를 성경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전적 부패(타락)”에서 찾은 것이다. 사실 행정, 입법, 사법이라는 정부의 3개 개념도, 성경에 익숙하던 몽테스키외와 로크 및 미국 건국지도자들이 성경의 역사에서 찾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이 정부 형태들 – 사사들(Judges)과 왕들(Kings)과 선지자들(Prophets) – 을 차례로 골고루 경험하며 처절히 실패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통해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된다.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사법)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입법)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행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이사야 33:22).”


마지막으로 종교의 자유, 혹은 정교분리의 원칙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땅을 분배한 후 이렇게 말한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여호수아 24:15).” 모두가 각 개인의 양심에 따라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존중받은 것이다.

창조주를 인정하는 정치

미국의 건국지도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지만, 가장 첫 번째 권리로, 표현, 언론, 집회 등의 자유 이전에 종교의 자유를 못 박았다. 1791년 발효된 수정헌법 제1조의 첫 부분이 그것이다. “의회는 종교의 설립에 관한 법안이나 그 실천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교회가 아닌 정부에 명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퍼슨을 비롯해 미국 건국지도자들이 말한 “정교분리”란, 교회나 성도의 표현을 제한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정부가 어떤 특정 종교의 신념을 강제하지 말 것과, 정부가 오히려 시민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호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과 유럽에서 국교가 수립된 후 교회가 정부 권력에 휘둘릴 뿐 아니라 개개인이 진정한 신앙을 잃어버린다는 관찰을 반면교사로 삼은 결과다. 무엇보다 이러한 교회와 정부의 “분리”는 윌 우드(Will Wood)가 말했듯이, “정부로부터 하나님과 그 의와 도덕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국, 성경을 통해 미국 건국지도자들은, 인간이 아무리 정교한 정부를 조직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초월한 상위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허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이스라엘 민족이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에 나라를 세우기 전에, 먼저 광야에서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이로써 그들은 국가 기초 문서인 독립 선언서를 시작하며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법을 인정하는 다음의 선포들을 천명하게 된 것이다.


" 인간사의 과정에서 한 국민이 … 자연의 법과 그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의 법에 따라 독립되고 동등한 위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게 될 때에는 … [그] 이유를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들을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즉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되었고,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특정의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이 권리들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들을 보장하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 정부가 수립되었다."


참고문헌

David Barton, Brad Cummings & Lance Wubbels (eds.) (2017) The Founders’ Bible, Second Edition: The Origin of the Dream of Freedom, Shiloh Road.

Daniel L. Dreisbach (2017) Reading the Bible with the Founding Fathers, Oxford  University Press.

David S. Lutz (1988) The Origins of American Constitutionalism, Louisiana State University.


(위 글은 기독교세계관 월간지 월드뷰 2019년 11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