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투표를 통해 국민이 직접 위정자를 뽑는 선거제도가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의미에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왜냐하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뿌리’나 ‘줄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뿌리는 무엇이고 그 줄기는 무엇일까? 인간 자유의 근원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는데 있음을 시인하는 기독교 보수주의자는, 자유민주주의의 뿌리가 바로 성경에 있고 그 줄기는 교회에 있음을 믿는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닌, 구체적이고 분명한 근거에 따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의 탄생을 살펴보면 실제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를 성경에서 찾아 국가의 통치제도를 구현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Mayflower)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들은 독실한 청교도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 가정 단위로 한권의 책만큼은 어김없이 소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네바성경>이었다. 제네바성경은 네덜란드에서 칼뱅과 테오도르 베자(Beza)의 지도를 받아 윌리엄 위팅햄(Whittingham)과 마일스 커버데일(Coverdale) 등이 1560년에 영어로 완역한 최초의 ‘스터디바이블’이다. 이 성경은 이전에 교회 강대상에 사슬로 묶여 있었던 헨리8세의 흠정역인 <Great Bible>과 달리, 처음으로 일반인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콘코던스, 지도, 도표, 권별요약, 주석 등이 실려 있었던 최초의 대중배포용 성경이었다. 초기 미국인들은 자녀들에게 국어(영어)를 제네바성경으로 가르치며 칼뱅주의를 온전히 내면화했다.
중요한 것은 제네바성경의 주석 내용이 칼뱅의 개혁주의 사상으로 가득했을 뿐 아니라 군주를 폭군으로 묘사하거나 왕권신수설에 도전하는 등의 ‘공화주의적’ 혹은 ‘민주주의적’ 성경해석이 빼곡히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50여년 뒤 제임스1세가 서둘러 흠정역 성경(킹제임스버전)을 발간해 널리 배포한 것도, 제네바성경에 담긴 “선동적이고 위험하고 반역적인” 주석의 내용이 퍼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문에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레오폴드 폰 랑케(Ranke)는 “미국을 건국한 것은 사실상 칼뱅”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그런 제네바성경을 들고 보스턴에 정착한 청교도들 중에는 1633년에 존 코튼(Cotton)과 함께 도착한 토마스 후커(Hooker)라는 목사가 있었다. “17세기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후커 목사는 당시 청교도 지도자들 중에서도 매우 개혁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엄격한 인터뷰와 입교 과정을 통해 ‘검증된’ 기독교인들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던 제도에 반발해, 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후커 목사는 존 코튼 목사와 갈등을 빚고 매사추세츠에서 쫓겨난다. 그는 1636년 약 100여명 정도 되는 자신의 회중을 이끌고 남서쪽으로 2주 간 이동해 하트퍼드(Hartford)시를 중심으로 코네티컷 주를 개척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정착촌을 세운지 2년 후인 1638년, 후커 목사는 회중에게 신명기 1장을 본문으로 “식민시대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설교”라고 여겨지는 말씀을 전한다. 바로 모세가 광야에서
“각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받는 자들을 취하여 ...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았던(신1:9~15)”
이야기를 전하며 그가 주장했던 민주적 대의정치의 명분을 설파했던 것이다. 후커 목사의 설교는 결국 수개월 후, 모세의 교훈을 따라 자유로운 시민들이 대표자를 선택해 제한된 권력으로 공동체를 다스리게 하는 코네티컷 주의 기본법으로 열매 맺는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성문헌법이라고 여겨지는 ‘코네티컷 근본 질서(Fundamental Orders of Connecticut)’다. 후커 목사가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코네티컷 주가 “헌법 주(Constitution State)”라고 불리는 이유다. 미국의 나머지 12개 주들도 이후 이 ‘코네티컷 근본 질서’를 토대로 각각의 헌법을 만들었고, 150년 후 13개 주 대표들도 이 문서를 뼈대로 독립국 미국의 헌법을 구상했다.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1789년 미 헌법을 비준하고 연방정부를 세울 당시에도 미국의 국부들은 다른 어떤 정치사상 문헌보다 성경에서 국가의 원리를 찾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도널드 룻츠(Donald Lutz)라는 정치학자는 1760년부터 1805년까지 15,000건의 미국 정치문헌들을 조사했는데, 당시 미국 정치문헌에서 성경이 인용된 비율은 전체의 무려 34%였다. 우리는 보통 미국의 국부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인물로 존 로크와 몽테스키외 그리고 영국의 법철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을 꼽는다. 하지만 사실 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인용된 인물은 모세였던 것이다. 특히 모세의 광야생활 마지막 설교인 구약의 신명기는 존 로크보다 두 배 이상 인용되었다. 신약의 바울도 몽테스키외와 블랙스톤만큼 인용되었다.
이처럼 자유민주적 헌정공화체제의 원천은 다름 아닌 모세의 신명기, 즉 성경에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는 성경을 “가장 공화주의적인 책”이라고 평가했고, 미국 영어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노아 웹스터는 성경을
“공화주의 원칙들의 최고의 원천이고 근간이다. 평등과 권리와 책임의 원칙들이 성경에서 비롯되고, 성경은 모든 폭정을 금지함과 동시에 법치와 질서를 존중하게 한다. 기독교의 가치관을 버리거나 파괴하면, ... 공화국의 기초가 흔들린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이 공화주의적 원칙이 처음 실험되고 구현된 모태는 다름 아닌 토마스 후커, 존 코튼, 로저 윌리엄스 등의 목사들이 이끄는 회중, 즉 ‘교회’였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면, 민주주의의 뿌리와 줄기는 실제로 성경과 교회인 것이다.
(이 글은 2020년 6월 23일자 기독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