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1년 사이 뒤바뀐 미국 대법원 판결, 왜?


LA 소재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 (존 맥아더 목사)

지난 8월 3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는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에 40만 달러(약 4억 6,700만 원)의 합의금을 지급해야만 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미국 수정헌법 1조를 어기며 이 교회의 예배를 제한했다는 이유다. 지난해 여름 LA 카운티는 교회 등 종교시설에 일정 비율 이상의 인원이 모일 수 없도록 하는 코로나19 방역 차원의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는 수천 명이 모이는 실내 예배를 계속한 바 있다. 이후 카운티가 교회를 상대로 예배 금지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예배 제한 명령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당국에 맞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의회가 국교를 세우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혹 발언이나 출판의 자유, 혹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나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라고 명시한다. 미국의 헌법이 연방정부의 역할과 범위, 그리고 명분을 규정한다면, ‘미국 권리장전’으로도 불리는 수정헌법 1조부터 10조는 국가가 침범할 수 없는 미국인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작년 말 뒤바뀐 대법원 판결

사실 1년 전인 작년 8월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가 당국에 소송을 제기할 때만 해도 정부의 과도한 코로나19 방역에 불만을 느끼는 종교인들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불과 4개월 전에 이미 연방대법원은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을 근거로 한 교회 예배 금지 조치에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출라비스타(Chula Vista)의 사우스베이연합오순절교회는 작년 4월 주 정부를 상대로 예배 제한 조치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사건을 5대 4의 의견으로 반려했다. 7월에는 네바다주에서도 비슷한 예배 제한 불복 소송이 제기되었지만 마찬가지로 반려되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2020년 추수감사절 하루 전이었던 지난 11월 25일 대법원은 5대 4의 의견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종교모임을 제한한 뉴욕주의 방역 조치가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뉴욕주는 캘리포니아주와 함께 가장 급진적인 민주당 주지사들이 집권 중이었는데, 특히 종교단체와 시설물을 ‘비필수(non-essential)’ 사업체로 구분하며 교회와 성당 등을 일반 음식점이나 쇼핑몰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해온 바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 8월 뉴욕 앤드류 쿠오모(Andrew Mark Cuomo) 주지사는 성추행 파문으로 사퇴했고, 캘리포니아 개빈 뉴썸(Gavin Christopher Newsom) 주지사도 9월 14일 리콜 선거를 치른바 있다. (리콜 선거란 주민들이 주지사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주지사 소환’ 선거다. 뉴썸 주지사는 겨우 선거에서 이겨 임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에 작년 말 가톨릭 브루클린 교구와 유대인 단체 등은 뉴욕주의 행정명령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연방대법원이 5대 4의 의견으로 “방역을 이유로 한 뉴욕주의 규제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위반했다”라며 종교단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뉴욕주에 대한 종교단체들의 11월 25일 대법원 승소 판결은 네바다, 뉴저지, 캘리포니아, 오레곤 등 주의 최소 20개 비슷한 사건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하 주 법원 및 항소법원에서는 11월 25일 연방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정부의 과도한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불복한 종교인들의 입장에 연이어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 예로 작년 12월 콜로라도주 하베스트교회와 뉴저지주의 가톨릭 신부 및 유대교 랍비가 각 주의 종교모임을 제한한 방역 조치에 불복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실내 종교모임을 최대 50명 혹은 건물 수용 가능 인원의 25%로 제한한 조치가 일반쇼핑몰에 대한 규제보다 과한 것으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콜로라도주는 판결 즉시 예배공간에 대한 모든 코로나19 인원 제한을 해제했다.


올해 2월 결국 사우스베이연합오순절교회가 캘리포니아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연방대법원은 예배 등 종교의 자유 권리 행사가 다른 사업체 운영의 권리 행사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게 종교행사를 차별하는 것으로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다고 판결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예배 및 종교 활동을 여타 사업체보다 과하게 제한했던 주 정부들이 교회 등 종교단체의 행정소송에 잇따라 패배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결국 6월, 사우스베이연합오순절교회 등에도 무려 200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해야 했다.

단 한 명의 차이, RBG vs. ACB


RBG 와 ACB

그렇다면 작년 말 연방대법원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11월 대선에서는 오히려 “교회는 필수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 공간”이라며 정부의 방역보다 종교의 자유를 우선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했다. 그리고 주 정부의 강력한 방역을 옹호한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작년 7월까지만 해도 5대 4의 비율로 정부의 방역 조치가 종교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판결했던 연방대법원은, 11월에 같은 5대 4의 비율로 종교의 자유가 정부의 방역 조치보다 우선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9명의 대법관 중 단 한 명의 차이였다. 바로 작년 9월 사망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RBG) 대법관의 자리를 10월 말부터 메꾼 에이미 코니 배럿(Amy Coney Barrett, ACB) 대법관이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미국 복음주의 목회자들의 대선투표 동기 1위는 ‘대통령의 대법관 지명권’이었다는 설문 조사가 있다. 그해 초 급작스럽게 사망한 보수주의 대법관 안토닌 스칼리아(Antonin Scalia)로 인해 대법원 공석이 생겼고, 기독교인들은 두 명의 진보 대통령(클린턴, 오바마)을 거치며 심각하게 좌경화된 사법부의 균형을 다시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프로 라이프(생명 우선, 낙태 반대)’ 입장 등의 보수주의자 대법관을 임명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백악관 입성 후 약속대로 보수주의 법관인 닐 고르서치(Neil Gorsuch)를 임명했으며, 이후 2018년 생겨난 공석에도 민주당의 극심한 음해와 반발을 뚫고 보수주의 법관인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를 임명해냈다.


그리고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지난 9월, 급진 페미니즘의 아이콘이자 ‘Notorious(악명 높은) RBG’라는 별명을 얻었던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으로 생겨난 대법원 공석에 또 한 명의 강력한 보수주의 법관인 배럿 판사를 임명했다. 스칼리아 대법관의 서기 출신인 배럿 판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강력한 보수주의자로서, 그의 임명은 사실상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미국 대법원에서 보수주의가 우위를 차지한 것이었다.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현재 6명이지만 그중 존 로버츠(John Glover Roberts, Jr.) 대법원장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미국의 사법부는 에이미 배럿 대법관 한 사람의 차이로 기존과 확연히 달라진 판결을 내리고 있다.

연방대법관_왼쪽부터 알리토, 캐버노, 토마스, 케이건, 로버츠, 고르서치, 브라이어, 배럿, 소토마요르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형평성

미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주류 언론의 논조를 언뜻 보면 ‘종교의 자유’ 혹은 ‘종교자유권’과 국민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기독교인 및 종교인들이 자신의 생명과 주변 타인의 생명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무리한 종교 활동을 굳이 강행하는 것으로 비친다. 언론 대부분이 실제로 “공공보건보다 우선되는 종교 자유,” “대면 예배가 타인의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판결한 미국 연방대법원” 등 오해의 여지가 많은 논조로 판결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 자유’를 주장하는 측의 손을 들어준 다섯 명의 대법관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러한 판결이 종교인의 어떤 이기주의를 반영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비친다. 하지만 이는 해당 판결의 논지와 입장을 교묘히 왜곡하는 것이다.


뉴욕주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교인의 종교의 자유권 행사가 타인의 생명권이나 공공보건보다 우선시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 활동이 여타 활동에 비해 지나친 방역 규제를 받고 있어 역으로 차별당하고 있다는 내용이고, 그러한 차별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판결문은 ‘침 시술소와 캠핑장, 정비소 등의 소위 필수 업종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비필수 업종으로 간주할 만한 여타 공장 등보다도 더 과한 방역 규제’를 교회 등 종교시설에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뉴욕주가 비필수 업종으로 구분한 사업체에도 인원 제한을 업주의 판단으로 맡기는 반면, 종교시설에만 지역에 따라 10명 또는 25명으로 인원을 제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종교인과 종교시설을 특정해 차별하는 것으로, 대법원은 이러한 차별적 규제가 “중립적(neutral)”이거나 “일반적 적용이 가능한(generally applicable)” 지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방역지침과 그에 따른 종교시설에 대한 차별 대우’였다.


닐 고서치(Neil Gorsuch) 대법관은 판결문에 이은 동조의견서에서 “헌법이 술집과 자전거 가게의 재개는 허용하면서, 교회와 회당과 모스크는 폐쇄하는 차별적인 행정지침을 용인할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가 종교 활동의 비교적 오랜 시간 소요를 문제 삼는 것이라면 실내 종교모임의 시간제한을 두는 등의 합리적인 규제를 펼쳤어야 했다”라고 꼬집었다. 11월 25일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 보수 법조인들의 모임인 페더럴리스트(Federalist) 협회에서도 사무엘 알리토(Samuel Alito) 대법관은 정부 방역의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네바다주는 카지노를 예배공간보다 더 호의적으로 대우해야 할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꼬집으며, 교회는 시설 규모에 상관없이 50명의 인원 제한을 두고 카지노는 시설의 최대수용인원 규모의 50%로만 제한하는 네바다주의 차별적 방역지침을 비판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종교시설 폐쇄 방침에 대한 올해 2월 연방대법원 판결도 마찬가지로 형평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에서 “정부가 어떤 세속적 활동을, 비견할 만한 종교 활동보다 우호적으로 대우할 경우” 헌법의 보호 장치가 작동되어야 함을 설명하며,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종교 활동을 일반화해 여타 사업체보다 특별히 종교시설이 코로나19 전파에 취약함을 섣불리 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서치 대법관은 또한 네바다에서 카지노를 방역 규제로부터 보호한 것처럼, 캘리포니아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같이 돈이 벌리는 활동에는 적용하지 않는 과도한 방역 규제를 교회와 같은 종교시설에만 부과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남을 지적했다.


실내 예배에 대한 금지령은 지난해 3월부터 주기적으로 시행되어왔고 8월부터는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극장과 쇼핑몰, 네일샵 등은 닫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펜데믹과 관련해 정부는 수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골대를 옮겨가며 특정 사업체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할리우드에서 스튜디오 관객을 모으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을 찍는 것은 용인되는 반면, 캘리포니아의 교회와 회당과 모스크에서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노래할 수 없다는 것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이어 4월에도 캘리포니아 정부가 기도 모임을 위해 일반 가정에서 세 가정 이상이 모이는 것을 금지한 행정명령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미장원과 소매점, 건강관리 숍, 극장, 스포츠 경기 및 콘서트, 실내 레스토랑 등은 세 가정 이상이 동시에 모이고 있다”라며 종교모임에도 동일한 형평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코로나 시국 종교의 자유에 대한 미국의 대법원 판례는 종교인을 편애하거나 종교시설에 대한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종교인과 종교시설에 대한 비합리적인 차별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1년 사이 바뀐 한 명의 대법관을 통해서 가능해졌다.


(이 글은 기독교세계관 월간지 <월드뷰> 2021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