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레이건의 “악의 제국” 연설 (1983년 3월 8일)

Updated: Mar 8, 2020

"악의 제국 연설"이라고 알려진 '미국 복음주의협회 연례회의'에서의 연설이다. "악의 제국 연설"이라고 잘못 알려진 1982년 6월 8일 영국 하원에서의 또 다른 유명한 연설이 있는데, 해당 연설에서도 소련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했지만 "악의 제국"이라는 표현을 한번도 쓰지 않았다.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도 이 영국하원에서의 연설이 "악의 제국" 연설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1983년 3월 8일, 플로리다주 올란도(Orlando)에 있는 셰라톤 트윈타워스(Sheraton Twin Towers) 호텔 연회장에서, 로널드 레이건은 소련을 “현대 세계 악의 진원”으로 지목하며 그의 가장 논란이 많고 도발적인 발언으로 꼽히는 연설을 했다.

아래 번역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악의 제국"이라는 표현을 했을때 레이건은 소련을 욕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치열한 선과 악의 싸움 위에 있다고 양측을 다 판단하는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의 교만과 비겁을 꼬집으며 나온 표현이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호킨스(Hawkins) 의원님, 플로리다 의회대표단 여러분, 그리고 모든 귀빈 여러분, 여러분의 환영이 저의 마음을 얼마나 따듯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이곳에 있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미국 복음주의협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영적 그리고 인도주의적 사역들로 잘 알려지신 분들입니다. 여러분들께 먼저 지금 저의 개인적인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저의 큰 태만일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낸시와 저는 여러 차례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의 존재를 느껴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언젠가 백악관 이스트룸(East Room)에서 있었던 모임에서, 누군가 저에게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아냐고 묻더군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압니다.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중보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런데 저는 참지 못하고 그 질문을 한 분과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기도를 하는데 통화중이면 그건 제가 먼저 기도중인 거라고요. [웃음] 저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나는 다른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압도적인 확신으로 인해 여러 번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을 때 그 기분을 알 것 같습니다. 여기 이렇게 기쁘고 좋은, 분위기 있는 행사를 마치고 저는 또 지루한 어느 정치 연회에 가야합니다. [웃음] 왠지 모르겠지만 또 이 스케줄 때문에 들려주고 싶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웃음] 그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어떤 복음주의 목사님과 정치인이 천국 문에 함께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사도 베드로는 모든 필요한 수속절차들을 마치고 그들을 그들의 숙소로 안내했습니다. 먼저 어떤 작은, 침대와 의자와 식탁이 하나씩 있는 싱글 룸에 가서 그곳은 목사님의 방이라고 했습니다. 정치인은 이제 자신에게는 어떤 방이 주어질까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요. 베드로는 정치인을 데리고 멋있는 정원과 많은 하인들이 있는 아름다운 별장 앞에 가서 그곳이 정치인의 숙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정치인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 선하고 거룩한 목사님은 방 하나를 얻었는데 제가 이런 별장을 얻습니까?” 그러자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상황이 어떤지 좀 아셔야겠네요. 여기는 너무나 많은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들어온 정치인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웃음] 저는 그런 선입견에 기여하지 않길 바랍니다. [웃음] 공직에도, 저를 비롯해서 많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헌신되고 고귀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우리가 왜 애초에 공직에 들어가게 됐는지, 그 초심과 원칙들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셔야 합니다. 그 이상과 원칙의 기초에는 자유(freedom)와 개인의 자유(personal liberty)에 대한 헌신이 있었으며, 그것은 또한 그 자유가 신의 축복을 간절히 구하고 겸손히 받아들여 질 때만이 번창할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바로 이 통찰력에 근거합니다. 이 발견은 우리 국부들의 위대한 승리였고 그것은 윌리엄 펜의 다음과 같은 목소리에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폭군에 의해 통치 받을 것이다.” 제퍼슨은 인간의 분리할 수 없는 권리들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동시에 자유를 주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조지워싱턴도 이렇게 말했지요. “정치적 성공으로 이끄는 모든 기질과 습관들 중, 가장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이 종교심과 도덕관이다.” 라고요. 마지막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기민한 관찰자였던 알렉시스 디 토크빌은 미국의 위대함과 천재성의 비밀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결국 이렇게 놀랍게 표현하지요. “미국의 교회들에 들어가서 그 설교단상이 의로움으로 불타는 것을 듣기 전에는, 미국의 위대함과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은 선하다. 그리고 만약 미국이 선하기를 그친다면, 미국은 위대하기를 그칠 것이다.” 여기 미국을 선하게 유지함으로서 미국을 위대하게 지탱하고 있는 여러분들과 여기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과 같은 수백만 사람들의 사역과 기도만이, 우리를 이 위태로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인간의 마지막 최상의 희망인 이 자유의 실험을 지탱할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이 정부가, 우리 국민들, 즉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마을과 공동체에서 미국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하는 그 정치철학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라는 것을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마을과 공동체는, 우리가 하나님 아래서, 타인을 위한 배려와 법치의 존중과 같은 가치들을 배우고 키울 수 있게 하는 제도들입니다. 이것은 우리 문명이 기초하고 있는 많은 시련과 세월의 연단을 거친 소중한 가치들을 폐기하려하는 현대 세속주의와 이 세속주의에 빠진 많은 사람들의 태도와는 반대되는 것이고 상충하는 입장이지요. 아무리 선한 의도가 있다하더라도 그들의 세속주의 가치체제는 우리 대다수 미국인들의 가치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은 우리를 과거의 미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를 정부의 규율과 규제로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가끔 그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목소리보다 클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들은 다수가 아닙니다. 지금 워싱턴에서 진행되는 논란들을 보면 그 우세한 목소리들의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워싱턴에 들어온 후로 저는 젊은 미국의 부모들에게 항상 묻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부모로서 가진 특권들을 정부에게 어디까지 양보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한 예를 가능한대로 간략하고 단순하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생아 증가와 미성년 소녀들의 낙태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어떤 시민조직이 얼마 전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전국단위의 보건소 네트워크를 설립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들의 의도를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한 의도에 따른 노력들을 통해서 이 보건소들은 이 미성년자 소녀들에게 부모의 동의 없이 상담을 제공하고 피임약들과 도구들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벌써 몇 년 동안 연방정부는 이 보건소들에게 보조금을 주고 있습니다. 이 예산을 주면서 우리 의회는 부모들의 참여를 최대화 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약들과 기구들은 부모의 동의나 통지도 없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사생아 탄생과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 “성적으로 활성화된” 소녀들에게 이런 지원을 주고 있습니다. 문란하다는 표현을 이제는 “성적으로 활성화되었다”는 표현으로 대체했지요. 우리 정부는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보건소들에게 이런 지원이 이행되었을 경우 부모들에게 통지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국내 최대의 신문사 중 하나는 우리의 조치를 반대하는 사설에서 이것을 두고 “고자질 규칙(squeal rule)”이라고 부르며 이 조치가 젊은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한 판사는 이 규칙의 집행을 방해하는 법원 명령을 허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시사토론 방송들도 보고 평론가들의 거들먹거리는 비평들도 읽어보았지만, 아무도 이 성 문제 논의에서 도덕을 언급하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모든 유대-기독교 전통이 틀린 것입니까? 성관계와 같은 신성한 것이 단순히 육체적인 것이고 정말 아무런 잠재적인 정서적, 정신적 피해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까?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조언과 충고를 주고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실수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은 마땅한 부모의 권리 아닙니까? 우리 정부는 가정에 대한 이런 정부의 침해에 대해 부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는 법원에서 싸울 것입니다. 부모의 권리와 가정의 권리는 워싱턴의 관료들과 사회설계자들의 권리보다 우선합니다. 부모통지를 반대하는 싸움은 우리의 전통적 가치들을 희석시키고 미국 민주주의의 원래 의미를 폐지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 중에 한 예일 뿐입니다. 자유는, 종교가 생명력 넘치고 하나님 아래에서의 법치가 인정되었을 때 번창합니다. 우리 국부들이 첫 번째 수정안을 통과시켰을 때, 그들은 정부의 방해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정부와 종교적 신앙의 개념 사이에 적대적 벽을 건설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정부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독립선언문은 신이라는 최고 존재를 최소 네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전에는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가 새겨져 있습니다. 대법원은 종교적 의식으로 모든 절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의회도 기도로 세션을 시작합니다. 저는 미국의 학생들도 마땅히 대법관들과 국회의원들과 같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저는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복원시키는 개헌안을 의회로 보냈습니다. 이미 의회에서는 이 개헌안에 대한 양당의 지지가 늘고 있고, 저는 의회가 속히 개헌안을 통과시켜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 몇 분은 러벅(Lubbock) 학교 사건에 대해 읽어보셨을 겁니다. 어느 교육구의 판사가, 종교가 있는 학생들과 종교가 없는 학생들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판결한 실제 사건입니다. 해당 종교 모임은 학생들의 개인 시간에 열렸는데도 불구한 판결입니다. 수정헌법 1조는 결코 이렇게 정부가 종교적 발언을 차별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덴턴(Denton) 의원과 햇필드(Hatfield) 의원은 학생들의 종교적 발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한 상태입니다. 이 법안은 공립학교 학생들의 종교발언의 자유를 회복시키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의회가 속히 이 법안들을 고려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도움으로, 올해 의회가 제가 제출한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이상 전의 대법원 판결은 50개 주의 태아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규들을 문자 그대로 완전히 삭제해버렸습니다. 임산부의 요구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게 된 낙태수술은 매년 150만 명의 태아를 죽이고 있습니다. 이 비극을 끝낼 수 있는 ‘인간생명 법안’은 언젠가 의회를 통과할 것이고, 여러분과 저는 이것이 통과될 때까지 결코 쉴 수 없습니다. 태아가 살아있는 개체가 아니라고 증명되기 전까지, 태아의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산모의 요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낙태(abortion-on-demand)가 허용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 특히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은 이 관행이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을 감소시키고 결국 낙태를 정당화하는 그 철학적 전제들은 인간생명의 신성함을 공격하는 다른 유아살해나 안락사들도 정당화하는데 이용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비극적이게도 그 경고들은 모두 진실로 드러났습니다. 불과 작년에 법원은 한 장애가 있는 아기의 기아사를 허용했습니다. 저는 1973년의 재활법이 유아를 포함해 모든 장애인들을 장애로 인한 차별로부터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의 모든 건강관리시설들이 분명히 알게 하도록 보건복지부에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가, 연방기금을 받는 모든 유아 대상 건강관리시설들이 뚜렷이 보이는 곳에 “이 시설에서 장애가 있는 유아를 먹이고 보살피는 것에 차별적으로 실패하는 것은 연방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공지할 것을 의무화했습니다. 또한 그 공지는 간호사나 일반인이 위반행위를 즉시 고발해 유아의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24시간 무료전화번호를 포함하도록 했습니다. 추가적으로, 일리노아 주 헨리 하이드(Henry Hyde) 의원이 하원에 제출한 최근 법안은 공적기금으로 지원된 낙태의 규제를 증가할 뿐 아니라 유아살해의 문제도 다루는 법안입니다. 저는 의회가 즉시 청문회를 시작하고 장애아를 포함한 모든 어린이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권고합니다. 때로는 절망적이지만 여러분은 아마도 여러분이 인정하시는 것보다 잘하고 계십니다. 현재 미국에는 놀라운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고 있으며 미국의 선함과 위대함의 기반이 되었던 전통적 가치들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워싱턴 기반의 한 연구위원회에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타국의 국민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입니다. 95%의 응답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십계명은 자신들의 삶에 실제 의미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 다른 연구는 미국인의 대다수가 간통과 청소년섹스, 포르노, 낙태, 마약 등에 부정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인들이 가정의 유대와 종교적 신념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서 이야기한 것들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회는 처음으로 기도와 낙태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하며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진전입니다. 반복하자면, 미국에서는 현재 영적 각성과 도덕적 회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성경말씀 기조에 따라 이 구절을 선포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합의들은, 우리나라의 성취와 기록을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역사의 긍정적인 측면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어떤 정부의 기획도 사람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악의 현상, 혹은 신학자들이 말하는 죄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죄와 악이 있고, 우리는 성서와 주 예수님의 명령으로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해결해야 할 악의 유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영광은 우리 과거의 도덕적 악들을 뛰어넘는 역량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때 분열과 내전의 원인이 되었던 소수시민 평등권을 위한 오랜 싸움은, 이제 미국의 자랑할 제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절대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리고 다른 종류의 종족적, 인종적 증오는 이 나라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몇몇 혐오 단체들의 증오와 편견을 부추기는 설교를 듣고 여러분도 저처럼 몸서리치셨을 것을 압니다. 여러분의 단상의 위대한 목소리와 여러분의 교회들의 강력한 위상을 가지고 이 혐오 세력들을 고발하고 고립시키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너희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나 우리 과거에 어떤 슬픈 사건들이 있던지 간에, 객관적인 관찰자는 희망이 가득차고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미국의 역사를 보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것입니다. 특히 지난 한 세기 동안에는 미국이 자유의 횃불의 불씨를 우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을 위해서 지켜냈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저의 마지막 요점에 이르렀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처음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 저는 어떤 질문에 답하며 소련 지도자들이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답게 공공연히 세계 혁명이라는 동기를 이루는 것을 그들의 유일한 도덕으로 선포했음을 지적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이끄는 정신적 지주인 레닌을 인용한 것뿐입니다. 1920년에 레닌은, 그들이 초자연적인 생각들 – 종교를 의미하는 그들의 용어 – 에서 나오는 모든 도덕과 함께 계급주의 개념에서 벗어난 모든 사상들을 부인한다고 말했습니다. 도덕은 그들의 계급전쟁의 이익에 완전히 종속된 것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도덕은, 오로지 옛 것을 소멸하고 사회질서를 착취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연합하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것 일뿐입니다. 많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소련의 교리에 대한 이 초보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합니다. 이는 전체주의 세력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질적 저항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1930년대에도 목격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이런 현상을 너무 자주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고립시켜서 그들과의 이해를 추구하길 거부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의 평화적 의도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그들을 설득하며, 40년대와 50년대 핵의 독점을 이용해 영토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거부한 쪽과 현재 전략탄도미사일을 50%까지 축소하고 모든 지상기반의 중거리 핵전력을 제거하겠다고 제안하는 쪽은 모두 서구라는 점을 상기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원칙들과 기준들을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제안하는 소위 핵동결 해법으로 우리는 이런 미국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어느 것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핵동결은 사실 오직 평화의 환상일 뿐으로 매우 위험한 사기입니다. 현실은 우리가 힘을 통해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직 소련의 국제적 야망을 동결할 수 있을 때만이 우리의 핵동결에 합의할 수 있습니다. 현재 무기 수준에서의 동결은, 소련이 제네바에서 진정한 협상에 나오게 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거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제안한 중대한 군축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결을 통해 그들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핵동결은 소련의 거대하고 비할 데 없는 군사력 증강을 보상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과 동맹들의 국방력에 필수적인 이미 많이 늦어버린 국방현대화를 지연시켜 우리의 낡은 군사력을 점점 더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동결이 제대로 되려면 핵시설과 무기의 개수 제한, 그리고 효과적인 검증과 협상 준수 측정에 대해 철저한 사전협상이 필요합니다. 지금 제안된 핵동결은 사실상 검증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큰 노력들은 우리가 현재 달성하려고 하는 상당한 군축 협상으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연예계의 촉망받는 젊은 아버지가 캘리포니아의 큰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냉전의 시기였고 공산주의와 우리의 삶의 양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도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작은 내 딸들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때 저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하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오, 안 돼. 그러지마. 그런 말까지 할 순 없어. 하지마.” 그러나 저는 그를 과소평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계속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공산주의 치하에서 자라나 어느 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하나님을 믿으면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엔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기쁨의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 남자가 한 말에서 순간 놀라운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육체와 영혼 중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인지 말입니다. 네, 우리 모두 전체주의 흑암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들도 하나님을 아는 기쁨을 발견하도록 기도합시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기 전까지는, 그들이 국가 지상주의를 설파하며 개인에 대한 절대 권력을 선언하고 지구상 모든 국민들을 궁극에는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그들이 현대 세계 악의 진원이라는 것을 분명히 직시합시다. 그의 잊어버릴 수 없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C. S. 루이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악은 디킨스(Dickens)가 즐겨 묘사하던 더러운 '범죄의 소굴'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강제수용소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곳에서는 악의 최종 결과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악이 구상되고 지시되고 – 제안되고, 지지되고, 결재되고 기록되는 것은 – 멋진 카펫이 깔린 깨끗하고 따뜻하며 환한 사무실에서, 흰색 와이셔츠에 잘 정리된 손톱과 매끈히 면도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는 조용한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 “조용한 이들”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형제애와 평화라는 알랑거리는 어조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을 앞선 독재자들처럼 언제나 영토는 마지막에 가서야 요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공격적인 충동을 수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가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면, 바로 적에 대한 순진한 유화정책이나 희망적인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 과거에 대한 배신이자 우리 자유의 탕진일 뿐입니다. 여러분께 강력히 권고합니다. 미국을 군사적으로, 도덕적으로 열등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맞서 목소리를 내십시오. 저는 항상 스크루테이프가 그의 최고의 노력들을 교회 안에 계신 여러분들을 위해 아껴 두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핵동결 제안에 대해 여러분이 논쟁할 때, 교만의 유혹을 경계하시길 권고 드립니다. 바로 유쾌하게 스스로를 그 모든 것 위에 있다고 선언하고 양측이 둘 다 잘못됐다고 평가하며, 악의 제국의 역사적 사실과 공격적인 충동성을 무시하고, 군비경쟁을 단순히 거대한 착각이라고 부르며 옳고 그름, 선과 악의 싸움에서 스스로를 제외하려고 하는 그 교만 말입니다. 우리 행정부의 노력들을 지지하는 것을 말리는 저들의 시도를 거부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세계 핵무기의 진정하고 검증가능한 축소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면 완전한 제거를 위해 노력하며 미국을 강하고 자유롭게 유지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력은 중요하지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현재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싸움이 폭탄과 로켓, 군대와 군사력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진짜 위기는 영적인 것이고, 그 뿌리에는 우리 도덕적 의지와 믿음의 시험이 있습니다. 휘태커 챔버스(Whittaker Chambers)는 종교적 회심을 통해 우리 시대의 끔찍한 트라우마 중에 하나였던 앨저-휘탸커 사건의 증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서구세계의 위기는 서구가 하나님께 냉담한 정도에, 또 사람을 하나님 없이 홀로 서게 하려는 공산주의와의 협력의 정도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두 번째로 오래된 신앙이며, 이 신앙은 에덴동산에서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는 유혹의 말로 시작되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명령한 자유를 믿는 믿음이, 공산주의의 인간에 대한 믿음보다 강해야만 서구세계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 도전에 응할 것을 믿습니다. 저는 공산주의가 또 하나의 슬프고 기이한 인류역사의 한 챕터를 장식하며 그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믿는 이유는 인간자유를 추구하는 우리의 힘의 원천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 동료 인간들을 노예로 삼고 있는 그들을 거부하게 하고 결국 그들을 이길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리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네, 여러분의 세계를 바꾸십시오. 우리 국부 중 한 사람인 토마스 페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가 홀로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함께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