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평세

레이건 대통령의 고별연설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1989년 1월 11일 집무실에서 이 고별연설을 마지막으로 대통령직을 마무리했다. 약 3,300 단어의 이 연설은 그의 집무실에서 저녁 9시 2분에 시작됐다. 이 연설은 생방송으로 전국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방영됐고 수천 만명의 미국인들이 이를 시청했다.



동료 미국인 여러분,


오늘 연설은 제가 제 집무실에서 드리는 34번째 연설이자 마지막 연설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8년을 함께했고, 이제 곧 제가 가야 할 시간이 올 겁니다. 그러나 저는 가기 전에 오랫동안 아껴 놓았던 몇 가지 생각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대통령이었던 것은 저의 인생에 큰 영광이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정말로 많은 분들께서 감사의 편지들을 보내오셨지만, 저도 여러분께 똑같이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낸시와 저는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해서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대통령은 항상 사람들과 어느 정도 동떨어져서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며 까맣게 썬팅이 된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높이 치켜들거나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을 너무 늦게 보고 함께 손을 흔들어줄 기회를 놓치곤 합니다. 차를 세우고 창문에서 손을 뻗쳐서 그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오늘 밤에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대통령직을 떠나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묻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이별은 정말 달콤한 슬픔”입니다. 달콤한 것은 캘리포니아와, 돌아갈 제 목장과, 자유입니다. 슬픔은 물론 작별이고, 또 이 아름다운 곳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대통령과 그 가족이 사는 백악관의 사저가 있습니다. 거기는 제가 참 좋아하는 몇 개의 창문들이 있는데 저는 이곳에 이른 아침마다 서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곤 하였습니다. 그곳의 전망은 이곳 뜰을 넘어 워싱턴 기념탑이 있고, 또 내셔널 몰 기념공원과 제퍼슨 기념관이 있습니다. 가끔 습도가 낮은 아침이면 제퍼슨 기념관을 지나 포토맥(Potomac) 강과 버지니아 강변까지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것은 링컨 대통령이 불런(Bull Run) 전투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본 전망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보다 일상적인 것들을 봅니다. 강둑의 잔디나, 아침 출근하는 차량들의 오가는 모습, 또 강을 지나는 요트 같은 것들입니다.


저는 그 창문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지난 8년이 어떤 의미가 있었고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숙고해보았습니다. 그 때 후렴처럼 떠오른 장면은 어느 항해였습니다. 어떤 큰 배와 어느 피난민, 그리고 어느 선원에 대한 작은 이야기였지요. 보트피플이 최고조에 달했던 8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남중국해를 순찰하던 미드웨이 항공모함 위에서 그 선원이 열심히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 선원은 대부분의 미국 군인이 그렇듯 젊고, 영리하고, 매우 관찰력이 뛰어났지요. 그는 수평선에 구멍이 난 작은 보트를 포착합니다. 그 배에는 인도차이나에서 온 피난민들이 미국에 가기를 희망하며 비좁게 가득 차 있었습니다. 미드웨이는 작은 보트를 보내 이들을 함선으로 안전하게 데려옵니다. 피난민들이 일렁이는 바다사이로 다가올 때 그중 한 명이 갑판에 서있는 선원을 발견하고는 일어서서 외쳤지요. “헬로우, 아메리칸 세일러, 헬로우 프리덤 맨”


이 선원이 한 편지에 쓴 이 위대한 의미를 담은 짧은 순간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글을 읽고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1980년대의 미국인이 가진 이미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자유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자유를 위해 서 있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세계가 그 사실을 다시 깨달았고, 어떤 면에선 우리 자신도 그 사실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여년은 굴곡이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의 몰아치는 폭풍에도 불구하고 힘을 합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함께 우리의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레나다 사태부터 워싱턴과 모스크바 회담까지, 그리고 81년과 82년의 경기불황으로부터, 82년 말에 시작돼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호황까지, 우리는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동안 두 개의 위대한 승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미국인들이 1,9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채운, 경기회복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우리의 사기를 회복한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로부터 다시 존경받게 됐고 세계는 미국의 지도력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저에게 일어났던 일이 이것을 반영합니다. 지난 1981년에 저는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그 해에 캐나다에서 열렸던 대규모의 경제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회담은 참가국이 돌아가면서 주최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첫 모임은 7개 경제 선진국 정상들을 위한 공식 만찬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학교에 처음 입학한 학생처럼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 있었는데, 그들은 프랑소와, 헬무트 등 서로의 이름을 부르더군요. 그들은 공식직함을 떼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친숙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좀 있다가 가까이 다가가 "저는 론이라고 합니다"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 해에 우리는 세금과 규제를 줄이고 정부의 소비를 억제하는 등 경제 회복에 불을 붙일 것으로 생각되는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 회복이 시작했습니다.


2년 뒤에 거의 똑같은 참석자들이 모인 또 다른 경제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성대한 개회식에 우리는 모두 모여 앉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저는 모든 사람들이 잠시동안 앉아서 저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침묵을 깨고 저에게 말했지요. "미국의 기적에 대해 말해주세요."


1980년 제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당시에 상황은 정말 달랐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의 프로그램들이 재앙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교 문제와 관한 우리의 입장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경제 계획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해서 결국 경제파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꽤 저명한 한 경제학자가 1982년에 "경제성장을 위한 미국의 동력은 사라졌고 앞으로 수년 동안 그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라고 얘기했던 것도 기억합니다. 이 학자를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들은 모두 틀렸었습니다. 따져보면 그들이 “과격”하다고 했던 것들은 “옳은” 것들이었고, 그들이 “위험”하다고 했던 것들은 가장 적합하게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위대한 소통가" 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표현이나 화법의 차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차이는 그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위대한 소통가가 아니라 위대한 것을 소통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저의 표정의 만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위대한 나라의 중심, 즉 우리를 2세기동안 이끌어 온 우리의 경험과 지혜와 원칙에 대한 신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레이건 혁명이라고 불렀지요. 그렇게 부르는 것은 받아드리겠지만, 사실 저에게 그것은 위대한 재발견에 더 가까웠습니다. 우리의 가치와 상식의 재발견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어떤 물건에 대해서 높은 세금을 물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적게 생산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의 세금 부담을 줄이자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물건을 생산해냈습니다. 경제는 이제 마치 잘려진 가지처럼 더 빠르고 더 강하게 자라났습니다. 우리의 경제정책은 역사상 가장 오랜 평시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가계의 실소득은 올라갔고, 빈곤지수는 내려가고, 기업들의 창업이 늘어나고, 연구와 신기술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미국은 높아진 경쟁력으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출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내수 보호를 위해서 보호주의의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의지를 일으켜 해외의 보호주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년 동안 지속되었던 무력감과 혼란감에서 벗어나 다시 강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국방을 재건했고, 올해 초에 우리는 세계의 새로운 평화를 기념하는 축배를 들 수 있었습니다. 초강대국들이 실제로 핵무기 비축 량을 감축하기 시작했고, 이는 앞으로 더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괴롭히는 지역 분쟁들 또한 멈추고 있습니다. 페르시아만은 이제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닙니다. 소련군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군인들은 캄보디아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고, 미국이 중재한 조약에 따라 앙골라에 파견돼 있던 쿠바군 5만 명이 곧 철수를 하게 될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주는 교훈은 바로, 미국이 위대한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들이 복잡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항상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첫번째 원칙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을 믿는 한 미래는 항상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것도 배웠습니다. 우리가 일단 위대한 운동을 시작하면, 그 끝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국을 변화시키고자 했지만, 우리는 결국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세계 각국은 과거의 이념에서 돌이키고 자유시장과 언론의 자유를 향해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1980년대의 위대한 재발견은 바로 도덕적인 정부의 방법이 결국 실용적인 정부의 방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위대하게 선한 민주정은, 또한 위대하게 생산적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39살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점에 이르면 사람들은 가끔 편안하게 앉아서 인생을 돌아보고 그 인생이 눈앞에 흘러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인생 중간 즈음에 어떤 갈라지는 지류가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정치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치는 제 어렸을 때 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에게 부여된 축복을 보답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저는 연예계에서의 경력이 만족스러웠지만, 저는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길 원했기 때문에 결국 정치에 들어섰습니다.


“우리 미국 국민은(We the People)”이라는 작은 세 단어들로 표현된 우리의 혁명은, 향후 정부의 형태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인류 역사상 최초의 혁명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정부에게 무엇을 할 지를 말하는 것이지,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운전사이고, 정부는 자동차입니다. 어느 목적지를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얼마나 빨리 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국민입니다. 세계 국가들의 거의 모든 헌법들은 정부가 국민에게 국민의 특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문서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헌법은 “우리 국민”이 정부에게 정부가 할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우리 국민”은 자유롭습니다. 이 신념이 바로 제가 지난 8년동안 수행하려 했던 모든 일의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제가 정치를 시작했을 당시, 우리는 일의 순서를 반대로 돌려놓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점점 더 많은 규칙과 규율, 그리고 몰수에 가까운 세금을 통해서 정부는 점점 더 많은 국민의 돈과 선택권, 그리고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저는 이런 정부에 대해서 손을 들고, "멈춰" 이라고 말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시민 정치인이었고, 시민으로서 그렇게 하는 건 마땅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그 동안 마땅히 멈춰야 하는 것들을 멈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정부가 제한되지 않는 한 국민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상기시켰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것은 마치 물리법칙과 같은 간결하고 예측 가능한 인과관계입니다. 정부가 팽창하면 자유는 축소합니다.


순수 공산주의보다 더 자유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소련과 만족스러운 새로운 유대관계를 정립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이것은 도박이 아니냐고 물어왔지만, 제 대답은 "아니다" 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조치를 말이 아닌 행동에 기초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의 데탕트는 행동이 아닌 약속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국민과 세계의 시민들을 좀 더 잘 대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는 여전히 존재했고, 정부는 여전히 팽창 주의 노선을 걸었으며, 그들은 여전히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중남미에서 대리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매우 다릅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국내적으로 몇 가지 민주적 개혁을 단행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소련군을 철수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날 때마다 명단을 건넸던 죄수들을 석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아주 작은 사건을 통해서 큰 일들을 다시 깨닫게 하곤 합니다. 한 번은 골치 아픈 모스크바 정상회담 와중에 낸시와 제가 오후에 수행자들에게서 벗어나 아라바트(Arbat) 거리의 상점들을 방문하기로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거리는 모스크바의 주요 쇼핑 센터에서 조금 벗어난 작은 거리입니다. 갑자기 결정된 방문이었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러시아인들이 우리를 알아보고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분들의 따듯한 환대에 우리가 휩쓸려 나갈 정도였습니다. 저희는 그 모든 기쁨 속에서 어떤 가능성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초가 지나지 않아서 KGB 요원들이 사람들을 헤집고 우리에게 와서는 군중의 사람들을 밀치기 시작했습니다. 참 흥미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소련의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하지만, 정부는 공산주의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부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은 우리와 그들이 자유와 인권 등의 이슈들을 매우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경계를 낮추어선 안되지만, 우리는 또한 긴장과 불신을 줄여나가고 제거하기 위해서 함께 일해야만 합니다. 제 의견은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이전의 소련의 지도자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는 그가 지도하는 사회에 무언가 잘못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문제점들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잘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지난 소련이 덜 위협적인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위해서 계속해서 일할 것입니다. 결국 저는 새로운 가까움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반응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는 한, 그리고 그들이 계속해서 유용한 방식으로 반응을 하는 한, 그 가까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러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사정을 봐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그러한 태도를 지속한다면, 생명줄을 끊어버릴 것입니다. 여전히 ‘믿되 검증하라’ 입니다. 여전히 게임은 계속하되 우리가 카드를 떼어야[1] 합니다. 여전히 신중하게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보게 될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어떤 후회가 없는지 물었습니다. 몇 가지 있습니다. 재정 적자입니다. 저는 재정 적자에 대해서 최근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재정 적자에 대한 논쟁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제가 관찰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의회에서 꽤 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은 바로, 여러분이 저를 위해 이겨 주신 것 외에는 제가 스스로 이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 군대, 레이건의 부대, 바로 미국 국민들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요청과 행동을 요구하는 편지들을 통해 모든 싸움을 이겨냈습니다. 여전히 여러분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일을 끝내려면, 이제 레이건의 부대는 부시의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곧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고, 제가 여러분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도 여러분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고별 연설에는 엄청난 경고를 던지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얼마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경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은 지난 8년에 걸쳐서 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들 중에 하나로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새로운 애국심”이라고 불렀던 국가적 자부심의 회복입니다. 이 국가적 감정은 좋은 것이지만, 깊은 생각과 지식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별로 효과가 없고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식에 근거한 애국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미국이 무엇이고 긴 세계의 역사에서 미국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나요? 우리들 중 35세 이상인 사람들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미국에서 자랐습니다. 우리는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매우 직접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에 대한 사랑과 국가제도들에 대한 감사를, 거의 공기처럼 흡수했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으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얻지 않았더라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으로부터, 한국에 참전했던 동네 아저씨로부터, 혹은 안치오(Anzio)[2] 에서 구성원을 잃은 가정으로부터 얻었을 것입니다. 혹은 여러분은 학교로부터 애국심의 배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들로부터 여러분이 애국심을 얻을 수 없었다면, 여러분은 대중 문화에서라도 어떤 애국심을 얻을 수 있었었을 것입니다. 민주정의 가치를 기리는 영화들, 미국의 특별함을 은연중 강화하는 영화들 있었습니다. 60년대 중반까지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이제 90년대에 진입하는 시점에 보면 몇 가지의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젊은 부모들은, 미국에 대한 명확한 존중을 현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옳은 것이라는 점에 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중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애국심이 담긴 작품은 더 이상 그들의 스타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은 돌아왔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다시 제도화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기업의 자유 등의, 자유의 나라라는 것을 더 잘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는 특별하고 흔치 않은 것, 그것은 깨지기 쉽다는 것, 따라서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유행이 아닌 중요한 것에 기초를 둔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필그림들이 미국에 오게 된 이유, 지미 둘리틀(Jimmy Doolitle) 중령이 누구인지와 도쿄상공에서의 그 30초가 무엇을 의미했던 것인지 말입니다. 저는 4년 전 디데이[3]의 40주년에, 어느 한 젊은 여성이 오마하(Omaha) 해변의 전투에 참전한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리사 자나타 헨(Lisa Zanatta Henn)이었는데,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억할 겁입니다. 우리는 노르망디에서 소년들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거에요.” 우리 모두 그녀가 그 말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웁시다. 우리가 한일을 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미국 정신의 쇠퇴를 야기하는 미국 기억의 소멸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기초부터 시작합시다. 미국 역사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시민의식을 더 강조합시다.


미국에 대한 가장 으뜸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미국의 모든 위대한 변화는 저녁 식탁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내일 저녁 부얶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 여러분, 만약 부모님들이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확실히 가르쳐드리세요. 그것은 매우 미국적인 일입니다.


오늘 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다입니다. 마지막 한가지만 빼고 말이지요. 지난 몇일 간 위층에 있는 창가에 있으면서, 저는 “언덕위의 빛나는 도성”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표현은 존 윈스롭이 그가 상상했던 미국을 표현했을 때 나옵니다. 그가 미국을 어떻게 상상했는지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초기 필그림, 초기 자유인 중에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보기엔 작은 목조 배를 타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필그림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자유로울 수 있는 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정치인생 내내 빛나는 도성을 이야기해왔지요. 하지만 제가 그 표현을 할 때 제가 봤던 그것을 제대로 전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상상속에는 어떤 높고 자랑스러운 도성이 바다보다 강한 반석위에 세워져서 바람받이가 되고 신의 축복을 받으며 각종 종류의 사람들이 조화와 평화 속에 살며 자유로운 그 항구가 상업과 창의성으로 활기찬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성에 장벽이 있다면 그 장벽의 문들은 들어오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이 있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문이었습니다. 제가 보았던 빛나는 도성은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오늘 이 겨울날 밤, 그 도성은 어떻게 서있나요? 8년 전보다 더 풍요롭고 더 안전하며 더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것을 의미합니다. 그 성이 세워진 지 200년, 2세기가 지나고도, 그 성은 여전히 강하고 진실되게 그 화강암 산마루에 서있으며 그 빛은 어떤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비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은 여전히 등대로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흑암에서 달아나는 모든, 길을 잃은 순례자들을 고향으로 끌어드리는 자석입니다.


우리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그 도성의 거리로 들어가면서, 레이건 혁명의 모든 남녀에게, 지난 8년간 미국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함께 일한 모든 남녀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냅니다. 친구들, 우리는 해냈습니다. 우리는 단지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는 이 도성을 더 강하게, 더 자유롭게, 믿을 만한 손에 맡겨졌습니다. 이만하면 꽤 괜찮았습니다.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럼 모두 안녕히 계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미국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1] 카드게임에서 카드를 섞는 상대방의 속임수를 방지하기 위해 다 섞은 뒤 직접 한번 패를 끊어 섞는 행위.


[2] 2차 대전 때의 연합군의 이탈리아 상륙 거점이다.


[3] 1944년 6월 6일 미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개시일